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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6 19:26

지팡이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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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역경을 극복한 주인공들을 보면서 느낀 솔직한 감정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구나!’

하는 정도로 그렇게 느끼며 가슴깊이 다가 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기적 같은 만남으로 인생 역경을 극복한  스토리’는

웬일인지 마음 깊이 와 닿아 자신은 물론 특히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글을 쓰게 되었다.

 

스토리의 주인공은 ‘미 백악관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의 아내 석은옥 여사의 고백’이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남편 강영우 박사의 서울 영락교회에서의 (2003. 8.29)간증을 소개하자면,

⦿..... “강영우는 1944년 경기도 양평 문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던 14세 때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습니다. 골 키퍼였던 그는 친구가 찬 공에 눈을 맞아 "외상에 의한 망막 박리"라는 병명으로 점차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4-5년 동안 수술을 하는 등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후 강영우는 이미 13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강영우가 17세때 현대 의학으로도 시력을 회복할 수 없고 완전 실명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바로 그날 오후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17살 되었을 때 9살짜리 여동생과 13살짜리 남동생과 함께 3남매가 고아로 남았지만 여동생은 어느 보육원에, 남동생은 철물점 사환으로 들어갔고, 강영우는 맹학교에 입학하여 점자를 배우면서 공부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독교 방송국에서 "인생 상담"이란 프로가 있었는데 자신의 신앙 갈등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프로를 담당하셨던 목사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고, 그 때 목사님은 오늘 본문으로 읽은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강영우에게 격려하는 말씀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를 만났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입니까?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도 아니고 ,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들은 강영우는 자신이 소경이 된 것은 죄의 대가로 받는 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강영우는 자기가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들어낼 목적이 있다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9장을 계속 읽어내려 가면서 그 소경은 눈을 떠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진흙에 침을 뱉아 눈에 발라 주고 실로암 못에 가 씻으라 하여 그대로 해서 정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만천하에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강영우는 완전 실명이 된 후 1년 4개월이나 기도와 찬송으로 그것도 병고치는 은사를 받았다는 주의 종과 함께 매달렸지만 고쳐 주시지 않았으니 자기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상담하는 목사님에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상담하시던 목사님은 약간 당황하는 듯 하더니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까지를 읽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 봐 하나님께서는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과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고통을 내게서 떠나게 해주시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번 번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도 바울의 믿음이 부족해서 가시로 찌르는 듯한 병을 안 고쳐 주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해 강영우는 새롭게 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도 바울과 동일시할 수 있는 근거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담 방송이 끝난 후 담당 목사님과 아나운서는 "대학생 보다 더 잘했다"고 하는 칭찬을 들은 후 낮에는 맹학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검정고시 학원에서 공부를 해서 결국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문과대학 차석으로 졸업을 한 후 미국에 가서 피츠버그 대학교 특수 교육 전공 교육학 석사, 같은 대학교 재활 상담 심리학 전공 석사가 되었고, 1976년에는 피츠버그 대학교 교육학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 최초의 맹인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했고, 한국에 나와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인간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를 사랑하고 도와주었던 많은 사람들, 그 가운데 후에 그와 결혼하게 된 아내 석은옥의 도움이 컸다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 끝으로 강영우 박사의 ‘지도자의 역설적인 10계명’은?

① 보통 사람들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십시오.

② 당신이 선행을 하면 보통 사람들은 숨겨진 자기 이익 때문에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선행을 하십시오.

③ 당신이 성공을 하게 되면 위선적인 친구들도 갖게 되고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성공하십시오.

 

④ 오늘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하는 좋은 일이 내일이면 허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일 남은 것이 아닐지라도 좋은 일을 하십시오.

⑤ 정직하고 솔직한 것이 때로는 당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가져다주고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경우라도 정직하게 사십시오.

⑥ 가장 위대한 사상을 가진 위대한 사람도 가장 졸렬한 사상을 가진 가장 작은 사람에 의해 쓰러질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이 있다 해도 위대한 생각을 가지고 위대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십시오.

 

⑦ 보통 사람들은 인생 패배자나 낙오자를 동정하지만 승자를 따라간다. 그러나 소수의 패배자들 편에서 함께 싸워 주는 삶을 사십시오.

⑧ 당신이 여러 해 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계속 탑을 쌓아 올라가십시오.

⑨ 보통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당신이 도움을 주면 오히려 당신을 비판하고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와 준 후 욕을 먹는 한이 있어도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주십시오.

 

⑩ 당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주고도 배신을 당해 이빨로 찍히고 발길로 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두려워하거나 개의치 말고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십시오.

 

⦿다음은 ‘ 미 백악관 정책 차관보 강영우 박사의 아내 석은옥 여사의 고백’을 들어보자.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이자,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 강영우 박사, 그의 뒤에는 한평생 그의 지팡이가 되어준 아내 석은옥 여사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다. 

석은옥 여사가 직접 말하는 감동 인생.

•.....“ 최고 엘리트였던 내가 앞 못 보는 남자와 결혼, 남편의 성공을 위해 헌신해온 감동 인생 사연”

이제 우리 부부는 인생 육십을 넘겼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의 인생을 뒤바꾼 한 맹인 소년과의 만남!

 

그 후 자원봉사자로 1년, 누나로 6년, 약혼녀로 3년, 그리고 아내로 34년을 그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왔다.

처음엔 고개를 젓던 사람들도 이젠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 찬사 뒤에는 우리 부부의 눈물과 고통 그리고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 강영우 박사와의 운명적 만남

우리의 만남은 어쩌면 숙명적이었다. 그가 평생 단 한 번 걸스카우트를 방문한 그때, 나는 걸스카우트 신입회원으로 그를 돕는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저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맹인 중학생이 10년 후 나의 신랑이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셨다면 나는 그대로 도망쳤을 것이다.

그때 그는 맹학교 중등부 1학년생이었고, 나는 여대생이었다. 가난과 실명의 고통에 찌든 모습을 상상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학생은 외모만 봐서는 전혀 맹인 같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그 학생만 힐금힐금 쳐다보았다.

누군가 그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오라고 했을 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내가 다녀오겠다,”며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 학생의 손을 덥석 잡고 광화문 사거리로 나섰다. 그때 처음으로 “숙대 영문과 1학년 석은옥이에요”라며 나를 소개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의 지팡이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열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1학년 때인 열다섯 살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이 맞아 실명했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실명 때문에 충격을 받아 뇌일혈로 세상을 뜨자 고아가 된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장애인 재활원! 으로,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재활원을 전전하며 남편은 수년간 방황했다. 자살도 여러 차례 기도했다.

그러나 어느 목사님의 도움을 받은 뒤 ,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다 가진 열 가지를 감사하자”며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처음 만날 때는 완전히 시력을 잃은 게 아니어서 남편은 어렴풋이나마 내 젊은 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불빛조차도 구별할 수 없는 완전 맹인이다.

그때부터 주말이면 맹학교 기숙사에 찾아가 책도 읽어주고 안내도 해주는 일을 1년 정도 봉사하다 보니 정이 들어,

그를 동생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다 싶어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당시 나는 그가 투병과 방황으로 여러 해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저 대학생과 중학생이라는 것만 생각해 부담 없이 그의 누나가 되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2년 정도 지나 그의 성적표에 있는 생년월일을 보고 한 살 반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양친이 안 계신 동생이 생기니 누나로서 할 일이 정말 많았다.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면 도시락을 싸들고 따라가야 했고 빨래, 장보기부터 대학 진학 준비에 이르기까지 온갖 뒷바라지를 해야 했지만, 동생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내게 기쁨이었다.

누나 동생으로 6년, 우리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 물론 아가페사랑이다.

당시엔 맹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맹인이 버스를 타려고 하면 차장이 밀어내기 일쑤고, 가게에서는 재수가 없다며 오후에 오라하고, 식당에서는 구석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와 만난 지 5 년째 되던 해, 그동안 혼자만 생각해온 유학 계획을 그에게 털어 놓았다. 나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는지, 그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며 반대했다. 나는 좀 당혹스러웠지만, 차분히 그를 설득했다. 결혼을 해서도 시각장애인 교육과 재활을 천직으로 알고 계속할 텐데 더 늦기 전에 유학을 다녀와야겠다는 말에 결국 그도 동의했다.

 

나는 1967년 9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동안 정이 든 그와의 이별은 큰 아픔이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가보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겹쳤다.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누나를 보내고 혼자 힘으로 다가오는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과 불안이 겹쳐 이별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내가 떠난 뒤 동생 영우는 마음을 독하게 고쳐먹고 대학 입시에 전념했다. 그리고 1968년 연세대 문과대 교육학과에 입학 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맹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원서 자체를 접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입학원서조차 낼 수 없다니,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미국 땅에서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데 4주 정도 지나 또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영문과 교수 한 분이 대필 해 주어 입학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교육과에 10등으로 합격했다는 것이다. 모르게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1968년 3월, 서울맹학교 고등부에서 연세대에 입학해 그동안 박박 깎은 머리를 기른 채 교복 대신 신사복을 입고 찍은 사진도 보내주었다. 정상인들과 같이 공부하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첫 학기부터 장학생이 되었다는 편지가 날아왔다.

 나는 15개월 만에 귀국했다. 그동안의 이별은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더 이상 누나 동생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1968년 12월 22일,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함께 연세대 백양로를 걷던 중 영우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다. 나도 그를 무척 좋아한 데다 남은 생을 시각장애인 교육에 헌신하려고 준비해왔는데 그를 반려자로 맞으면 남편에게 맹인 동생을 이해해달라고 할 필요도 없으니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우의 사랑을 받아주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장래를 약속한 우리 두 사람은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 두 사람은 비밀리에 약혼식을 올렸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둔 홀어머니가 애지중지 기른 딸을 맹인에게 준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절대로 안 된다!”며 반대하셨지만 결국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친구들은 더 심했다. 어떤 친구는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쳐다보며

“관상을 보면 팔자가 그렇게 센 것 같지는 않은데 하나님이 해도 너무하셨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학벌이 좋으면 뭐하니? 너는 좋아서 결혼한다 해도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식들을 생각해봐. 아버지가 장님인데” 하고 말렸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2년 2월 26일, 대학생이던 약혼자를 졸업하기까지 만 3년이나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나이 서른이 다 되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난 다른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늦은 편이었고, 모두 판사, 의사, 약사, 대기업 간부의 부인이 되어 있을 때 연하인 맹인 학사를 신랑으로 맞은 것이다.

그래도 어찌나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는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아 하객들의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맹인 아내로서 내가 겪은 고통 1972년 8월, 우리 부부는 가슴에 큰 뜻을 품고  LA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에는 장애가 해외유학의 결격사유에 속했다. 그 항목을 삭제하고 한국 장애인 최초 정규 유학생이 될 때까지 몇 동안 겪은 마음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결국 피츠버그대학교 9월 학기 개강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한미재단총재와 연세대 총장이 공동으로 제안한 청원서에 문교부장관이 서명함으로써 미국 유학의 가장 큰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LA에 도착해 여러 해 동안 그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신 양부모님을 만나 일주일을 보내고 피츠버그에는 개강 전날 도착했다. 당시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서울을 떠나기 직전까지 맹인재활센터에서 일했고, 입덧도 심했다. 그러나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돕지 않으면 강의실에도 갈 수 없어 편하게 쉴 수도 없었다.

 

하루는 남편을 강의실에 들여보낸 뒤 도서관에서 책을 녹음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강의가 끝난 지 30분 이상 지난 시간이었다. 온 힘을 다해 강의실로 뛰어가 보니 그는 불안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하고 부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디 갔다가 이제 왔느냐며 화를 버럭 냈다. 나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항상 잘하다가 한 번 실수했는데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싶어 섭섭한 마음에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미국에 와서 처음 한 부부싸움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은 보행훈련을 받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혼자 강의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데 엄두를 못 내고 미루던 차에 결단의 기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행훈련을 받아도 자주 다니지 않은 곳이나 생소한 지역을 갈 때는 여전히 정안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보행훈련을 받아 나에 대한 의존도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를 안내해주어야 했다.

 

어린 두 아들을 남에게 맡긴 채 남편의 대학원 강의실을 향해 떠날 때,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남편의 강의가 먼저였다.  맹인 아빠에게 젖먹이 아기를 맡기고 도서관에 자료 심부름을 갈 때면 혹시 불이라도 날까 불안했지만 그의 눈이 되고 지팡이가 되는 것이 먼저였다. 몸이 아플 겨를도 없이 매일 동분서주하는 고달프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후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수업료는 문제가 없었는데, 생활비로 나오던 장학금이 만료된 것이다. 닥치는 대로 막일이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병원 청소원으로 겨우 취업이 되었는데 이민국에서 노동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민하던 어느 날, 캠퍼스 근처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한 맹인 여성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다가가 한국에서 유학 온 맹인 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그네를 밀어주던 남자가 자신이 남편이라고 했다. 과부가 과부사정을 안다고, 우리 사정을 이해할 것 같아서 초면에 우리 형편을 털어놓았다. 

 

그 부부는 우리에게 자기 집 3층을 내줄 테니 와서 함께 지내자고 했다. 대신 식사 후 설거지를 해주고, 두 내외가 외출할 때 어린 두 자녀를 돌봐달라고 했다. 남편이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가족의 생계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 생각할 것도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집에 살면서 매일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해도 행복하기만 했다.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머지않아 박사가 될 남편을 내조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주관 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남의 식모살이나 하는 처지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가 오히려 아파트에 살 때보다 더 행복했다. 우리와 처지도 같고 동년배라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문화를 배우는 계기도 되었다. 또 두 살 된 진석이도 네 살, 다섯 살이던 그 집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둘째 아이 진영이가 생겨 더욱 감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절대 좌절하거나 울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맹인이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 내외는 출세 지향적이 아닌, 성취 지향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 맹인이기 때문에 넘어야 할 물리적, 심리적, 법적, 제도적 장벽을 넘을 때마다 오히려 성취감을 느꼈다. 또 쾌락보다는 보람을 추구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할 때마다 승리감과 보람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었다.

 

1976년 4월 25일, 남편이 드디어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당국의 배려로 박사 복을 입은 남편을 총장 앞으로 안내하면서 느낀 보람과 행복이란….“마음껏 사랑하고 즐긴 것은 결코 잊히지 않으며, 자신의 일부분으로 남게 된다.”는 헬렌 켈러의 말이 생각났다. 물론 아무나 맹인의 아내가 되어 어려운 내조를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지팡이가 되어, 때로는 희생을 요하는 힘겨운 내조를 할 때도 그 일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성취를 나의 성취로, 그의 성공을 나의 성공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취인 것처럼 느껴져 더 행복했다. 어려움이 닥치고 고난이 겹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도 고대하던 박사학위를 받고도 남편은 고국에 돌아가 대학 강단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해 무직자로 8개월을 보내기도 했다.

 

맹인이 어떻게 눈뜬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논문지도를 할 수 있겠느냐며, 어디에서도 남편을 채용하지 않았다. 무직자인 박사 남편, 아직 어린 진석이, 갓 태어난 진영이,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가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형편이었다.

 

장학금으로 지급되던 생활비가 졸업과 동시에 끊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졸업과 동시에 만료된 유학생비자를 다시 살리기 위해 남편이 포스트 닥터럴 프로그램에 들어갈 때의 일이다. 오도 가도 못하고 막다른 골목에 배수진을 친 남편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오히려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현재의 고난을 성공의 조건으로 바꿔주실 테니 인내하며 좀 더 기다려 봐요. 부디 아무 걱정 말고 연구에 몰두하고 직장 찾는 노력이나 계속하세요.”

 

지금도 남편은 당시 자신의 고통을 함께하면서 그러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줄 때가 가장 고마웠다고 말한다. 하루는 나의 격려가 통했는지 남편이 면접을 다녀오더니 취직이 되었다고 했다. 기적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면접을 보았지만 번번이 영주권이 없어 채용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일단 학생비자로 취직이 된 것이다.

 

남편은 인디애나 주정부 교육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1월 3일 첫 출근을 하게 되어 서둘러 인디애나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인디애나에 도착해 남편의 첫 출근과 함께 나는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30년이 흘렀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동안 무사고 운전으로 남편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인디애나 주정부 교육청에 근무하면서, 저녁에는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대학원에 출강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로터리 클럽 회원으로 매주 주회에 참석하는 것을 비롯해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운전사 역할을 해야만 했다. 어쩌다 병이라도 나서 내가 누워버리면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질 텐데, 다행히도 그런 기억은 없다. 아마도 내조하는 기쁨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보람이 엔도르핀을 나오게 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 남편이 인디애나에서 직장생활을 한 지 2년 가까이 되던 1987년 9월, 유학을 떠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한국 언론은 ‘우리나라 최초 장님 박사 탄생’, ‘한국 최초 맹인 박사 금의환향’ 등의 제목으로 남편의 귀국을 대서특필했다. 

 

그때 그 기사를 본 연세대 윤형섭 교수가 <조선일보>에 '평균점수’라는 제하의 칼럼을 썼다.

내용인즉슨, 앞 못 보는 장님이 박사가 되었다기에 기사를 읽어보니 그 뒤에는 남편의 유학 뒷바라지를 하며 석사학위 교사까지 된 부인의 희생적인 사랑과 내조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이는 한국 여성의 평균 점수를 올려주었다는 것이다.

 

1983년 6월 5일은 남편이 최초로 국제무대에 등단한 날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국제 로터리 세계대회에서 그가 연설을 한 것이다. 23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1만6000명의 세계 민간 지도자가 모인 단상으로 남편을 안내하는데, 연설자도 아닌 내가 극도로 긴장해 떨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는 수많은 군중의 시선을 볼 수 없어서인지, 그다지 긴장하지 않고 연설했다. 그리고 남편은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받았다.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은 450만 명에 달한다. 그중 2500명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으며, 그중 500명은 상원 인준까지 받아 이름 앞에 ‘Honorable’이 붙는다. 먼 이국땅에 유학 와서 이민자로 정착한 지 사반세기 만에 남편은 'Honorable’이라는 경칭이 붙는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가 되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 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 자리에 오른 것이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불쌍한 맹인 중학생을 안내하기 시작한 지 40년, 이젠 명예로운 자리에 서게 되는 자랑스러운 남편을 안내하면서 느끼는 감회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의 강점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하나의 팀으로서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게 되었다. 1972년 신혼부부로 미국 땅에 도착할 때 태중에 있던 진석이는 링컨 대통령의 장남 로버트 토드와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 하버드대 그리고 안과의사의 꿈을 이루어 듀크대학병원에 근무 중이며,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를 맞았다. 작은아들 진영이는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 출신으로 부시 대통령 부자와 동문이다. 약관 27세의 나이로 연방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리처드 더빈 상원의원 입법 활동을 보좌하는 고문변호사이며, 아내 역시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처럼 이민자로 미국 땅에 와서 교육자의 꿈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교육인명사전, 미국여성명사인명사전에 올라 역사 속에

 

지난 2003년 5월 29일, 내 생일에 아들 며느리가 한자리에 모였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축하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 남편이 말했다.

“아들, 며느리 네 명의 박사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니 당신 정말 행복하겠소.” 진영이가 웃으며 덧붙였다.

“네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잖아요.” 그렇다. 한집에 다섯 명의 박사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지팡이가 되어 헌신적인 아내로, 두 아들을 잘 키워 훌륭한 며느리들까지 본 어머니로 살아온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이처럼 선명한 비전으로 내 인생을 인도해 신앙 안에서 명문가를 만드는 동반자가 되어준 남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필자는 한편의 감동적인 인생드라마! ‘를 보는 것 같아 웬일인지 글을 소개하면서 가슴이 찡하고 눈시울을 적셨다. 먼저 자신을 되돌아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가치관에 대한 세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 첫째,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권력, 명예, 부 등이 충족되면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까?

• 둘째, 출세와 성공만이 행복의 길인가?

• 셋째, 나 자신이 주인공과 같은 입장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이 기회에 우리 모두는 부부의 사랑, 가족의 소중함, 아내의 헌신적 내조의 힘은 인생 삶의 기적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기적 같은 일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모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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