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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을 제외하면 성경의 종말론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마태복음 24장만큼 중요한 본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태복음 24장에는 예수님이 원수들의 손에 넘겨지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셨던 유명한 감람산 강론이 기록되어 있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인간 역사의 종말과 자신의 재림을 묘사하시는 것이라고 무심코 가정한다. 실제로 이 해석은 복음주의 안에 대단히 확고하게 뿌리내린 상태여서, 사람들은 누가 거기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려 든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는다. 마태복음 24장에 사용된 술어와 비유적 표현은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을 신호하는 "표지들"과 항상 연결되어 대단히 자주 인용되어 왔기 때문에, 대안적인 제안들을 얼마간 들려 줄 기회를 얻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만 살펴보자.

 

광고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광고는 실제로 미국 주요 도시들의 모든 일간지에 등장한다. 나는 가장 최근에 [USA 투데이](2010년 3월 31일자)의 스포츠면에 실린 광고를 보았다. 만일 그 광고를 보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확실히 그것을 보지 못한 소수의 사람에 포함된다. 그 광고는 적어도 그리스도가 곧 오실 것이라고 대담하고 분명하게 예언한다! 그 기사는 계속해서 이것이 참일 수밖에 없는 "여덟 가지이 유력한 이유"를 밝혔다.

 

내 생각에 이 책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는 목적과 관련해서 가장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느껴지는 것은 마태복음 24장과 예수님의 감람산 강론이 그 여덟 가지의 "유력한 이유들" 가운데 다섯 가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감람산 강론이 없으면 그 기사가 결코 작성되지 않았거나 설령 가시화되었더라도 실질적 효과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근과 폭력과 전쟁"의 증가는 이른바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왔다는  표징으로 주장된다(마24:6-8이 인용됨). 지진의 증가도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로 인용된다(마24:7이 인용됨). 사이비 종교와 거짓 영성의 폭발적 증가(마24:24)도 적그리스도의 기만행위(마24:15)와 함께 임박한 재림을 알리는 확실한 전조로 인용된다.

 

내가 이 기사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다만 오늘날 복음주의 신자들 사이에 흔히 나타나는 경향, 다시 말해 예수님이 감람산 강론에서 하신 말씀을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로 호소하는 경향을 예증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 세대주의가 개설하는 예언적 시나리오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내가 제기하려는 질문이 극도로 까다롭게 느껴지게 된다. 내가 우리 모두에게 제기하는 도전은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TBN이나 [USA 투데이] 대신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 크게 주의하면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정통했던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 이 서사를 읽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예수님이 그 강론의 초점을 친히 입증하시는 것과,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용어들을 구약 성경이 정의하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앤드류 페리먼(Andrew Perriman)의 생각에 동의한다. "우리는 21세기 현재에서 역추적하면서 읽기보다, 오히려 주후 1세기에서 미래의 방향으로 읽도록 애써야 한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계시적 언어가 현대 해석자에게 대단히 난해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과거의 사정을 이미 알고 있는 유리함 속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표현을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그런 유리함이 도리어 불리함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적 언어는 오히려 유리문에 적힌 글자와 같다. 일단 우리가 그 문을 통과하면, 그 본문은 좌우가 바뀌어서 판독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그 본문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그 본문이 문의 반대편에서 어떻게 보였어야 했는지를 상상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 본문을 보았을 사람들은 바로 그 본문이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때,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이 실제로 주후 70년에 발생할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를 묘사하고 계심이 분명해질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1-31절에 대한 개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많은 혼란은 우리가 가진 성경에 나타난 인위적인 장절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마태복음 24장 1절에서 시작하는 대신에 23장으로 되돌아가서, 예수님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통렬하게 비난하시는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땅 위에 흘린 의로운 피"(마23:35)에 대한 심판이 종교 지도자들 위에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시려는 요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마23:36)고 공언하시는데, 이 세대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기리킨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 위에 심판이 임박했음을 경고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마태복음 21장 33-46절도 읽어야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술은 43절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또한 마 22:1-14에서 특별히 7절을 보라). 가장 노골적이고 불길한 진술은 마태복음 끝부분에 나타나는데, 그 진술은 회개를 요청하는 예수님의 애처로운 호소에 이어진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23:37-39).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확실히 크게 실망했음에도 예수님께 "성전 건물들"(마24:1b)을 가리켜 보였다. 예수님의 반응은 단호하고 확고하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24:2). 예수님은 주후 70년에 일어날 것으로 예견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임박한 파괴에 대해 이보다 더 명확하고 삼뜩하게 말씀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성전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완전히 무너져 평평해질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에 들어가셨던 모습(마21:1-17, 소위 "개선 입성")만큼이나 극적으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떠나신다. 한 때 웅대하고 영화로웠던 이 하나님의 집이 이제는 완전히 이방인의 수중에 넘겨진다("보라 '너희' 집이 너희에게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23:38]. 강조는 필자의 것임). 에스겔의 환상에서 하나님이 성전에서 떠나실 것이라는 메아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울려 퍼진다(겔10:18-19, 11:22-23을 보라). 성전이 물리적으로 최종 파괴되는 사건은 다만 성전이 하나님에 의해 영적으로 완전히 버림받았음을 외적으로 보여 주는 표시일 뿐이다. 예수님은 지금 성전을 떠나시고 두 번 다시는 돌아오시지 않는다. 성전을 떠나 감람산에 앉으시는 예수님의 행동(마24:3)은 참으로 에스겔 11장 23절을 연상시키는데, 거기서 우리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른지라"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리하여 성전은 지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나 상징적으로도 버림받았다. 하나님의 현존에 동반되는 영광은 떠나갔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감람산 서쪽 경사면을 오른다. 거기서 아름다운 성전 건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골짜기를 굽어 보는 동안, 제자들은 한 가지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간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마24:3, 또한 막 13:1; 눅21:5-6을 보라).

 

예수님은 두 가지 중요한 답변을 하신다. 먼저 예수님은 성전이 언제 파괴될지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다음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대한 것과 달리 자신의 재림과 종말이 그때에(즉, 성전이 파괴되는 것과 동시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말씀도 제자들에게 하신다. 다시 말해, 성전 파괴는 징조들을 근거로 연대 추정이 가능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연대 추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 4-28절은 성전 파괴보다 앞서는 사건들과 성전 파괴를 포함하는 사건들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다. (1) 4-14절은 주후 33-70년 사이의 전 기간을 특징지을 수 있는 사건들을 가리키는데, 그 가운데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최후가 크게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징조가 아니다. (2) 15-28절은 예언된 파괴가 막 일어나려 함을 시사하는 하나의 징조를 가리킨다. 4-14절에 기록된 사건들은 그때의 특징을 나타내고 진통이 단지 시작되었음을 신호하는 데 반해, 15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종말이 이르렀음을 명백히 확증하는 하나의 징조("멸망의 가증한 것")를 제공한다.

 

논란은 29-31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표면화된다. 세 가지 견해가 우리에게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29-31절이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날 재림을 묘사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 대부분이다. 29절이 현재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세대를 묘사하는 반면에 30-31절이 재림을 묘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내가 변호하려는 견해는 29-31절에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것이다. 오히려 그 구절들은 주후 70년에 발생한 예루살렘 성의 멸망, 그리고 복음이 선포되고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구원받는 교회 시대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이 전례 없는 환난의 기간(주후 66-70년)은 정해지지 않은 길이의 시대를 열거나 시작하는데, 그 기간에 환난이 두드러지겠으나 또한 우리도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대인데, 누가는 이 세대를 "이방인의 때"(눅21:24. 참고, 롬11:25)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그 환난의 날들"(29절)은 주후 33년과 70년 사이에 발생한 모든 일들을 가리키는데, 특별히 주후 66년과 70년 사이에 예루살렘 성의 포위 및 약탈과 관련된 사건들(21절에서 "큰 환난"으로 불림)을 지시한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셨던 그 세대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광경을 살아생전에 목격할 텐데, "이 모든 것"은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로 이어지고 그 파괴를 포함하는 사건들을 가리킨다(마24:34-35). 비록 성전이 언제 파괴될지를 암시하는 징조와 사건들은 있겠지만, 종말(예수님이 36절에서 "그 날과 그때"로 말씀하시는 때)에 나타날 예수님의 재림은 미리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준비가 필요하다(36-51절).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간추려 보자.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존재하는 이 세대 전체가 비록 환난, 시련, 고난의 시대이기는 하지만, 21절에 언급된(그리고 15-31절에 묘사된) 이른바 대환난은 이미 왔다가 지나갔다. 그 대환난은 주후 66-70년 사이에 발생한 예루살렘 성의 포위 공격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그 환난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로마 군대(15절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불림)의 손에 파괴됨으로써 최고조에 이르렀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 21절에 설명된 "큰 환난"(눅 21:22와 막 13:19에서는 각각 "징벌의 날"과 환난의 날"로 불림)은 미래 사건이 아니라 과거 역사 속의 기정사실이다.

 

 

간략한 변호

 

내가 이 구절을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구절이 포함된 문맥은 하나님이 세대(주후 1세기)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를 내리실 것이라는 예언들과 관계있다. 우리는 마태복음 23장 35, 36, 38절에서 이 점을 뚜렷이 목격했다. 이런 예언은 그 역사적 순간에 성취될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진다. 둘째, 제자들이 했던 질문은 그 당시 예루살렘에 서 있던, 자신들이 방금 떠나와서 산비탈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파괴에 대한 예언에 궁금증이 커지는 성전과 관계있었다. 셋째, 예수님이 주신 답변은 어느 미래의 성전이 아니라 그 당시 서 있었던 성전과 관계있다(참고, 2절). 넷째, 15-22절에 묘사된 상황들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주후 1세기에 적합한 조건에 한정된다.

 

다섯째, 그 구절 전체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제로 들었던(최초의) 사람들이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측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경고와 교훈에서 2인칭이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예를 들어, "너희가 듣겠으나"[마24:6].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마24:9]. "그러므로 너희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24:15],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마24:23],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24:25],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마24:33]).

 

여섯째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예수님은 이 예언적 시나리오가 "이 세대"(34절)에 적용된다고 말씀하신다. "세대"로 번역된 단어가 실제로 "종족"을 의미하므로 예수님이 단지 이 모든 것이 발생하기전까지 "유대 민족"은 멸망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점을 비켜 가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을 뒷받침하려면 헬라어 단어 '게노스'가 사용되어야하지만,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게네아'다. 뿐만 아니라, '게네아'라는 단어는 복음서에서 27회 사용되지만 "종족"을 의미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는 추가 연구를 통해서, "세대"라는 단어가 마태복음의 다른 곳에서 예수님이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 관련해서 사용됨을 알게 된다(마12:38-39, 16:4, 17:17을 보라). 복음서에서 "이 세대"라는 단어가 나타나는 때는 언제나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즉 예수님이 살았던 것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 전부를 의미한다(마11:16, 12:41,42,45와 특별히 23:36을 읽어 보라). 뿐만 아니라, "이"라는 관형사는 예수님이 염두에 두셨던 세대에 함축된 동시대성을 지시한다. 만일 예수님이 미래 세대를 염두에 두셨다면, "저"라는 관형사를 선택하셨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케네스 젠트리(kenneth Gentry)의 견해에 동감한다. "예수님은 단지 2천 년(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경과한) 뒤에 완전히 다른 어떤 성전의 파괴에 대해 이야기하실 의도로 지금 자신이 서 있는(마24:1) 주후 1세기 성전이 '황폐해질' 것이라고 공언하고(마23:38)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뒤에(마24:2)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사오리까?'라는 질문(3절)에 답변하고 그곳에 세워질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해 경고(15절)하심으로써 그 성전을 공개적으로 정죄하시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우리는 마태복음 24장 2절을 읽고서 미가(미3:12)와 예레미야(렘7:12-14)가 주전 6세기에 솔로몬 성전에 대해 비슷한 예언을 담대하게 전했던 사실을 곧 떠올릴 필요가 있는데, 그 두 예언은 주전 587년에 모두 성취되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활동하실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는 성전이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이 우세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했던 질문을 다시 실펴보자.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 "이런 일들"은 예언된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만을 지시할 수밖에 없다(처음에는 마23:36-38에서 그리고 또다시 마24:2에서). 나는 예수님이 24장 4-35절에서 이 첫째 질문에 답변하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제자들은 이렇게 성전이 파괴될 때 예수님의 재림(또는 '파루시아')도 일어날 거라고 믿는다는 느낌을 준다. 제자들은 그 당시 대다수의 유대인이 그랬듯이 성전이 세상만큼이나 영속한다고 믿었음이 분명하다. 성전이 파괴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역사의 종말에 대한 신호탄이 틀림없다. 예수님은 이런 잘못된 가정을 바로 잡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실상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셈이다. "그렇지 않다. 두 사건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멸망 및 성전 파괴와 연관된 '이 일들'은 참으로 '이 세대' 사람들이 생존하는 동안 발생할 것이다(마23:36, 24:34). 그 일들을 가리키는 징조들[예수님이 4-28절에서 말씀하실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강림과 역사의 종말은 그때 동시에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긴 유예(마24:36-25:30에 묘사됨)가 뒤따를 것이다. 그 어떤 징조도 내가 다시 오는 정확한 때를 지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항상 방심하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마24:36-51에 서술되듯이 그리고 25:1-30에 나타나는 많은 비유들처럼]."

그래서 나는 R.T. 프랜스의 견해에 동감한다. 마태복음 24장 4-35절은 "성전 파괴와 관련되며, '언제'라는 질문에 대해 34절에 요약된 분명한 시간의 척도로 답변한다. 그리고 '파루시아'와 관련된 둘째 질문은 24장 36절['그러나 ~에 관해서는']에서 오직 새로운 시작으로만 그 구조 속에 들어오는데, 그것은 이전에 발생한 일들과 달라 아무도 예견할 수 없고 심지어 방금 전에 성전이 파괴될 시간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예언하신 예수님조차도 모르시는 '날과 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주님이 4-14절에서 제공하시는 설명은 3절의 사건들이 언제 발생할지와 관련해서 성급한 흥분과 억측을 미연에 차단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예수님은 "속단은 절대 금물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요점은 이 일들이 예루살렘 성의 임박한 파괴에 대한 징조도 아니며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징조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건들은 단지 진통의 시작일 뿐이다. 이 사건들은 예수님이 언제 얼마나 빨리 재림하실 것인지를 우리에게 일러 주는 것과 관련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이 사건들은 주후 33-70년 사이의 기간을 특징짓는 사건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 샘 스톰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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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2017.01.26 09:06
    마태복음 24 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있어여 하되 끝은 아니다" 하십니다.

    자연재해, 전쟁 같은 사건들을 보고 끝을 점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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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한 예언 2017.01.26 13:26
    어차피 안식교는 종말 예언으로 시작되어서
    모든 이슈가 종말론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에 따라서 앞으로도 수많은 에언가들이 출연하여
    점을 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나간 시행착오에서 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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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운혁 2017.01.26 15:26
    계10:11에서 " 다시 재림에 대해 예언하여야 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 입니다. 즉 예수님이 활동하신다는 증거가 "예언의 영"의 형태로 들나게 될것입니다.

    악령은 미래를 예언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미래를 주장 하시는 분이시며 미래를 예언하십니다.

    고전 14:1,3,5,39 " 나는 너희가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였죠.

    단 12:12를 연구 하십시요. 깨달을때까지 집요하게... 연구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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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 제21회 미주재림 연수회 file 새벽별 2017.02.20 61
928 확실하게 두둘겨 주는군요 1 장도리 2017.02.20 152
927 홍수 전과 후 신의 변덕을 어떤 목사는 이렇게 풀었다. 11 김원일 2017.02.19 318
926 김균 장로님 가정 선교 100주년 기념 예배 (1916-2016년) 1 천성교회 2017.02.19 799
925 트럼프와 일요일휴업법-x 1 앗 예언이 성취 2017.02.18 182
924 이재명의 '뚝심' 통할까? '아이 무상 진료' 파격 공약. "18세 이하 청소년-어린이 무상 진료" 파격공약 2017.02.17 193
923 짜장면 두그릇 곱배기 2017.02.17 107
922 엘리사의 기도와 오병이어의 기적 9 아기자기 2017.02.16 234
921 성소언어-좋은 친구님 참조 3 file 김균 2017.02.14 277
920 요즈음 그리고 오늘 10 file 김균 2017.02.14 519
919 이 세상 풍파 심하고 4 풍파 2017.02.14 154
918 "탄핵 음모" 서울디지텍고 교장, 교내 사이트에도 우파논리 '도배'. 이기범 기자. 1 어리석은자 2017.02.13 74
917 누가 삯꾼인가? 5 김주영 2017.02.13 203
916 성소와 세속도시 7 김주영 2017.02.13 220
915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사랑하는 내 모국의 아이히만, 김기춘 간신, 역적 1 김원일 2017.02.12 136
914 minchotheo 9 반상순 2017.02.09 511
913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고 영혼이 참 맑다" 영혼이 맑아서 참 좋았겠다 2 김균 2017.02.04 485
912 이 목사의 설교 4 김주영 2017.02.04 465
911 정유라의 말 중계업자 독일인 만나는 우리나라 대통령 1 김균 2017.02.03 258
910 3월 1일부로 이 누리의 이름을 바꾸려 합니다. 23 김원일 2017.02.02 702
909 오늘(미국시간 2월 1일)부터 설명 없이 삭제되는 글들은 대부분 그 이유가 이러합니다. (2.1 성명^^) 18 김원일 2017.02.02 478
908 미국에 계시는 네티즌님들 한 표 부탁합니다 4 김균 2017.02.01 448
907 깨달은 마음으로 쓰는 글 무실 2017.02.01 68
906 고무 배를 타고 오는 난민을 구하는 그리스 사람들 그리고 난민과 이민자를 더 이상 허용않겠다는 미국.... 4 무실 2017.01.30 148
905 sda성도님들께서 깨달아야할 중요한 빛 6 file 루터 2017.01.30 168
904 의의 기별을 거절하므로 둘째천사기별선포결과 6 file 루터 2017.01.29 115
903 거룩함의 정치 혁명  (마지막회) 곰솔 2017.01.29 65
902 전통적 예언 해석의 오류들 김운혁 2017.01.29 71
901 극상품(완전한 품성) 포도나무에서 들포도가 맺힘은 어찜이요? 광야소리 2017.01.29 69
900 도올 김용옥 직썰 "박근혜 최순실 문제를 해결할 단 하나의 방법" 도올 2017.01.28 150
899 정결한 자들의 기도 제목은 심판 (25) 곰솔 2017.01.28 44
898 애덤 스미스 - 공감대로서의 도덕 (24) 2 곰솔 2017.01.27 124
897 일상의 금융화는 결국 이집트 7년 흉년으로? (23) 곰솔 2017.01.26 85
896 우리들의 세계 9 file 김주영 2017.01.26 460
»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 3 징조 2017.01.26 198
894 슬픈 메트로폴리탄 (22) 곰솔 2017.01.25 104
893 1260일과 42달의 관계 설명(영상) 김운혁 2017.01.25 29
892 선악간의 대쟁투에서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들 김운혁 2017.01.25 23
891 현대미술의 정치혁명 (21) 곰솔 2017.01.25 40
890 레위기 11장의 서곡 - 나답과 아비후 이야기 (20) 곰솔 2017.01.25 58
889 제국(요셉, 솔로몬)과 반-제국(다니엘) (19) 곰솔 2017.01.24 93
888 지구 7바퀴 반... 동해바다 2017.01.24 66
887 도하지(道下止)와 정도령(鄭道令)의 관계.......해월 황여일의 예언 (해월유록) 현민 2017.01.23 81
886 예수님께서는 "조사심판"에 대해 친히 무엇이라 말씀 하셨는가? - 김균님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친구 2017.01.23 177
885 차세대를 망치는 교육 정책 (18) 곰솔 2017.01.23 99
884 언제나 시작하는 또 다른 말세와 조사심판 1 file 김균 2017.01.23 540
883 ‘TRUMPISM’ (17) 1 곰솔 2017.01.21 133
882 성령과 성경 1 file 김주영 2017.01.21 201
881 십자가로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의미에 대하여. 김운혁 2017.01.21 66
880 후안무치 점입가경 2 file 김균 2017.01.20 347
879 파편화 정보 / 동물적 사회 (16) 곰솔 2017.01.20 60
878 '영원'을 불신하면서 '영생'은 사모하는 우리들의 모순된 자화상. 김운혁 2017.01.20 49
877 너의 이름을 평생 기억해줄께 산울림 2017.01.20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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