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머니의 편지
주열아 내 아들아 지금 살아 있으면 마흔이 되었을 보고 싶은 내 아들 주열아 내 나이 딱 마흔 한창일 때 너를 잃은 뒤 봄이 가고 또 봄이 가고 지금은 경기도 시흥땅 과천 세상 모르는 주공아파트 차가운 벽 속에 갇혀 박대통령 죽던 해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네 형 광열이의 요강을 들고 올해도 찾아오는 봄을 맞이했구나 네 눈에 박힌 최루탄은 아직도 이 늙은 에미 가슴속에 박혀 있는데 네가 사는 하늘가 민주의 나라 네가 사는 바닷가 평화의 나라에는 민주꽃이 피느냐, 상여꽃이 피느냐 이제사 진달래꽃 피면 무엇하느냐고 이 땅의 젊은 사내 울어쌓더니 올봄에도 과천땅에 진달래는 피는구나 주열아, 보고 싶은 내 새끼야 아들 잃고 영감 잃고 살림마저 망해 버린 에민 이제 4월의 어머니가 아니야 너는 민주의 꽃, 4월의 눈물 에미는 먼 산 아지랑이만 바라보며 4ㆍ19 때 배운 담배만 피워 문다 아이고, 마산 시민들 다 들어 보소 우리 주열이 우리 아들 온달 같은 내 새끼 반달 같은 내 새끼 좀 찾아 주소 제발 좀 찾아 주소 실성하듯 울부짖던 그 날이 올 때마다 파령재 너머 남원땅 우비산 기슭 4월의 언 땅 위에 너를 묻은 뒤 네 무덤가에 쭈그리고 앉아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 들여다보면 이제는 에미의 눈물도 말랐구나 마산시장 저놈 죽이고 나 죽을라요 부둣가 다리밑 나무숲 골목마다 마산 앞바다 물이라도 다 퍼올려 너를 찾아헤매던 그 날 그 때 에미는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구나 그래, 주열아 내 새끼야 함포만 바다 속이 그 얼마나 추웠느냐 최루탄 박혀 울던 네 맑은 눈동자 이제는 아프지 않단 말이냐 밤 소나기 쏟아지던 4월의 밤 마산에서 남원으로 관도 없이 맨몸으로 파령재 넘으면서 울지는 않았느냐 너를 실은 지프차가 동네 밖을 돌아갈 때 마지막 가는 네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바다에서 건져올린 네 운동화짝만 끌어안고 에미는 울고 또 울었구나 지금도 날 부르는 네 목소리 들리는데 네 사진 가슴에 안고 울며 가던 학생들 네 관에 꽃다발 놓아 주던 그 남원여고생 이제는 널 만난 듯 보고 싶구나 올해도 수유리에 백목련은 피는데 아들아 주열아 내 새끼야 서러운 네 무덤가에도 봄은 오느냐 4월의 푸른 땅 푸른 하늘 위로 혁명처럼 봄은 또 오고 있느냐
< 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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