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풍경을 보려고

by 산울림 posted Jan 01, 2017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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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딸내미 생일이라

장미 몇 송이 사러 꽃집에 들러

따뜻한 난로 옆에 앉으니 졸음이 몰려옵니다.

어디쯤인지 한길 옆에 차를 세워두고는

오랜만에 시골 들어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점심때쯤이나 되었을까 버스는 모퉁이를 돌아

조그만 다리를 건너 개울가에 멈춰 서니

할머니한분이 산골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털실목도리로 얼굴까지 감싼

보한 할머니가 광주리에 다리를 묶은 씨암탉 두 마리를 넣고

구부러진 허리를 펴고서는 “아이고, 허리야”

얼마를 기다렸는지 숨을 헐떡거리면서 차에 오릅니다.

날씨가 추운데 조심해서 천천히 타라고 운전수가 말합니다.

차에 탄 사람이래야 할머니하고 세 사람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이리도 없으니 기름값도 안 된다면서

이렇게 외진 산골은 하루에 한번씩만 버스가 다닌다고 합니다.

 

산 닭을 가지고 어디로 가는지 무척 궁금한가? 봅니다.

요즘은 닭을 안고 차를 타는 게 보기 드문 일이니까요

어릴 적에는 다리를 묶어 메 들고 장에 가는 걸 흔히 보았습니다.

운전수는 어디까지 가는 길이냐고 물어 봅니다.(본다.)

집 앞에 도랑에서 벌레 뒤지고 풀 쪼던 토종닭인데

몸이 좋잖아서 종점인 골마에 빈 토담집을 수리하여

서울에서 달포 전에 내려온 사위가 살고 있는데

이거라도 삶아 먹이면 원기라도 회복할지 모르겠다며

얼마간이나 있으려는지 몰라도 보러 가는 길이라면서

이렇게 추울 줄 알았으면 딸보고 태우러 오라 할 것을

괜히 나섰다고 합니다.

공기 좋은 곳에 내려오니 올 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볕만큼이나 따스한 모습입니다.

 

옛날 같으면 버스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어

차장이 난간에 붙어 서서 배를 붙여 억지로 떠밀고 문을 닫으면

운전수는 갑자기 부레끼를 밟았다 놓으면서

사람들을 앞으로 확 쏠리게 하여 간신히 손잡이를 붙잡았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순이 하고 엉겁결에 껴안고 얼굴이 빨개진 후로는

같은 차를 타고 다녀도 부끄러워서 말도 걸지 못했습니다.

배릿한 하얀 냄새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데 말입니다.

나중에는 순이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은 듯 했습니다.

할머니를 보니 어디서 본 듯한데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겨울풍경을 보려고 산골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덜커덩거리며 버스는 산머리를 돌아서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시냇가로 접어듭니다.

다리가 있은 흔적이 있는데 지난여름비에 떠내려갔나 봅니다.

십여 미터나 되는 얼음 위를 지나가니 어릴 때 추억이 떠올라서

버스를 멈춰 달라 했습니다.

여긴 집이 없는 곳인데 어디를, 산소를 가느냐고

운전수와 할머니는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봅니다.

산골이 좋아서 바람이나 쐬려한다 하니 고개를 갸웃? 거립니다.

연기를 내뿜으며 버스는 떠나가고 얼음을 따라 발길을 옮기니

차가운 산골바람이 얼굴에 와 닿아 정신이 맑아집니다.

털실 모자를 꺼내 쓰고 마스크를 찌니 두 눈만 빠금합니다.

반쯤은 얼음에 잠긴 여울 가에 난 버드나무는 한겨울을 이겨내고

내년 봄 얼음이 풀릴 때는 보송한 잿빛 버들간지를 선보이겠죠.

얼음 밑에는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합니다.

가만히 얼음위에 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봅니다.

 

“촐촐촐, 조르륵”

어디서 오는 걸까?

포도산 묵로골 옹달샘에서

퐁퐁퐁 솟긴 물 여기까지 오나

자죽자죽 가운데 들어가 보니

속살까지 내 보이는 투명한 얼음

반짝이는 금빛모래 곱기만 하다

 

개구리는 풀잎 속에 꼼짝도 않고

돌 바위 뒤에 피라미 미동도 않은 채

낯선 이 찾아왔다 반겨주는가

흐르는 여울 따라 꼬리만 살랑

촐촐촐 소리 들으며 여행을 떠난다.

 

이 좋은 얼음판에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 위로 보니 시내 양옆으로 아담한 마을이 보이는데

왼편으로는 압시골 가는 길, 앞들은 건들인가

오른쪽 교회 있는 곳이 신평이라, 어디로?

젊은 사람들이 몇은 살 것 같은데

요기서도 학원 보내느라 아이들을 잡는 모양입니다.

지천으로 깔려있던 자갈과 바위들은 제방을 쌓으면서

하천을 밋밋하게 밀어놓아 감춰진 얘기들을 모두 묻어버렸습니다.

요 구석도 조 구석도 모두가 보따린데

바위를 파내고 나무를 베어버려 냇물 따라 함께 흘러가버렸지요

 

얼음이 녹는다고 썰매를(시게토) 타지마라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갱변에서 시게토 타다가 얼음이 꺼져 옷을 홀랑 버려

나무 꺾어 황닥불 질러놓고 엉덩이 말리다가 구멍을 뻐끔하게 태워먹어

종아리에 줄서도록 데게 맞았다고 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가니

섭이-넘 했던 말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불에 양말 말리다가 태워먹은 것이 그때 섭이-넘 뿐이던가.

그래서 양말은 누릇누릇하고 좀 뻐득해 손으로 비벼 신었습니다.

여기쯤이 섭이-넘 빠진 덴가? 짐작을 해봅니다.

 

자전거타고 중학교 다닌다고 오늘같이 땡땡 춥고 바람이 거센 날은

자전거는 비벼도 잘 나가지도 않고 손은 시리고 귀걸이는 했어도

다리가 영 짧아 엉덩이 뻐쩍 세우고 페달을 세게 밟던

치구-넘 모습이 어제 일같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산기슭 함석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산골에서 맛보는 평안함입니다.

저위엔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버스가 보입니다.

운전수는 주척거리며 차를 세우려다 한길을 건너니 그냥 지나쳐갑니다.

고개를 빼며 보는 눈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저 버스를 타야 되는데

시골정취에 빠져 그냥 차를 보냈으니

혼자서 까만 밤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같음 호래이 나온다고 무서울지 모르지만

별을 보며 걸어가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둑을 지나 시냇가로 돌아드니 꽤 넓은 새보(洑)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물로 한여름에 논바닥이 갈라져 거북등이 될 때

농부들은 이 보(洑)로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미태풍 때 떠내려가서 새로 설치한 것 같습니다.

나락이 타들어갈 때 물꼬를 터다가 이웃간에 싫은 소리해서

한동안 조맨(왕래두절)하며 지내는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돌을 주워 던지니 얼음판위에서

쌩-챙챙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쩡쩡거리면서 얼음 숨쉬는 소리도 들립니다.

평평한 얼음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좀 뛰-와서 지르륵 얼음판위로 두발에 힘주어 뻗대 미끄러지니

치르륵 거리면서 신발신은대로 썰매가 타집니다.

고무신 신고 쪼그려 앉아 두 손을 내밀면 누나가 앞에서 끌고나가다

신발이 미끄러져 엉덩방아 찢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 엄마는 썰매 타러 나갈 때면

연못에는 숨구멍이 있으니 늘 조심해야한다 했습니다.

그 생각이 나서 바깥으로 나와 자갈을 들고 힘 있게 쏘았습니다.

“핑 핑핑 핑핑핑” 얼음위로 돌 나는 소리가 가볍게 들립니다.

 

조금 위로 더 올라가 마을 쪽을 바라보니

꾸불렁하게 신작로가 나있는데 오르막 진 곳이 보입니다.

간간이 삼판-차 다닐 때 보하케 먼지만 일으키던 흙길이었는데

이제는 까만 아스팔트길로 단장이 되었습니다.

산골에도 집집마다 한대씩 차 있는 세상입니다.

산골학교 운동장에서 이 오르막까지 뛰 왔다 되돌아오는

달리기를 시켜서 고무신 들고 막 뛰었던 생각이 납니다.

촌-넘이라 뜀뛸 때는 늘 앞에서 달렸던가.

한-적진 집 옆 우사(牛舍)에는 이십 여두 소들이 가되어(가뒈)

주인이 주는 사료만 받아먹고 살만 찌우고 있습니다.

산골에 살 때는 소죽솥에 짚과 콩깍지를 등겨와 같이 섞어

푹 끓여낸 소죽을 바가치에 가득 퍼서 소죽통에 부어주면

두어 번 머리를 흔들면서 김이 술술 나는 여물을 어물쩍 씹으며

콧김을 푸푸 내뿜고 흐르는 침과 콧구멍을 혀로 실실 말아 닦으며

눈만 껌뻑거리던 우리집 소는 논밭갈이를 하는 큰 일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소 팔려고 마당으로 내몰 때면 늘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소죽벅에 묻어둔 고구마 꺼내먹으면 뜨거운 게 구시하였지요.

마을에는 쉼터가 보이고 저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나

아버지와 같이 할아버지 산소에 시사 지내러 갈 때

영감 할배 따님이 영해로 출가를 하셨는데 외손녀가

이집으로 오셨다면서 옛날 같으면 서로 알만한 집인데

서로 떨어져 살고 있으니 사는 게 다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 손녀가 서울어디학교 교수라 하셨던가.

오르막 올라가는 저 집이 그 집 같기도 한데

멀리서 바라보니 푸근한 마음입니다.

 

저기 바위산 아래에는 모래가 깔려있고

시냇가 주변으론 숲과 자갈이 늘려있습니다.

우뚝 솟은 검은 바위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습니다.

움푹진 골바위에 불을 지피면 산꼭대기 바위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 날 것 같은 큰 바위산입니다.

마을의 전설을 간직한 채 지켜보는 증인입니다.

검바위는 조무래기들이 소풍을 자주 오던 곳이었습니다.

4학년 때도 여기 온 것 같습니다.

버드나무 숲에 감춰둔 보물쪽지는 한번도 찾지 못했으니

아마도 그것은 주최 측의 속임수였을까?

검바위는 알고 있을 텐데 오늘 고거나 물어봐야겠습니다.

둥글게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누가 노래잘하더라 시키려고 하면

순이 가슴은 콩공 뛰고, 시키면 어찌할꼬. 입만 달싹

조무래기들이 밟은 자국은 켜켜이 쌓여있고

가만히 살펴보니 모두가 남겨놓은 추억들입니다.

 

한여름 밤에 모기 뜯고 푹푹 찌던 밤

모래밭 여기서 멱 감고 수박 서리했던

촌-넘 들이 한두 명이었을까

누구 목욕하나 지켜 본 넘 하나도 없었을까

밤늦게 아무도 없을 때 요기서 우리 둘이 만나자고

아침에 차타면서 접은 쪽지 몰래 건넨-넘들

솔바람에 물었더니 검바위는 다 알고 있다더라.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지나간 배고픔도 사변 때 슬픔도

모두 간직한 우리들의 삶입니다.

산골에는 컴컴하게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돌아 나오니 캄캄한 밤입니다.

집집마다 노란불이 켜지면서 반짝거립니다.

오랜만에 볼 수 있는 별들입니다.

 

여름철 학교를 파하고 멱 감았던

가막소(沼), 퉁소(沼), 산골학교, 솔 두들, 헝글레소(沼),

호박소(沼), 용소(沼), 포도산 솔 뫼기까지 가보지 못하고

여기까지만 여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깜깜한 밤입니다.

부지런히 걸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십 여리는 나가야 차 있는 데까지 갈 것 같은데

너무 멀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산골은 고요해서 내발자국 소리도 정겹게 들립니다.

달떴으면 그림자와 친구해서 심심치 않을 것을

저 멀리서 비쳐지는 불빛이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기다리다 무조건 손을 드니

멈칫하다가는 그냥 가버립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옵니다.

좀 세워주지 그냥 가버리나

들 중간으로 비쳐지는 불빛에 뒤를 보니

차한대가 내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혹시나 싶어 다시 손을 들었더니

조 앞까지 그냥 휙 지나더니 길옆에 차를 세웁니다.

얼른 달려가서 나가는 길인데 차 좀 태워 달랬더니

읍내까지는 가지 않고 조 쩍에 있는 다리까지만 가는데

타려만 타랍니다.

껌껌한데 창문으로 보니 아까 본 할머니입니다.

할머니 집에는 소를 두 마리 키우는데 짐승을 굶길 수 없어

주무시고 가라해도 나가야된다 해서 모시고 가는 중이랍니다.

할머니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미안타며

젊은이는 예전에 이쪽에 사셨나?

뭐 하러 이 촌(村)까지 구경을 다 왔나 라고 묻기에

지도 저위에 있는 산골학교 다녔다고

누구하고 같이 댕겼다고 얘기를 하니

운전하면서 듣고 있던 딸래미가 얼굴을 돌리면서

부리 끼를 세게 밟습니다.(끼이익-)

“아이고, 야야, 앞에 뭐가 있나?”

갑자기 차는 왜 세우 노

“그게 아이고”

얼굴을 돌리는데...

 

“아저씨, 장미꽃 다됐는데요”

“아이고, 아줌마 조금만 기다리지”

휴, 아쉽다

오늘 순이 볼뿐 했는데

달콤한 꿈이 깨어버렸습니다.

오늘아침에 장미가 들어와 싱싱하다면서

졸업 철이라 장미 값이 조금 올랐답니다.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오지않아서 가뭄이 심한것 같읍니다.

대지를 촉촉히 적시면 우리곁에 벌써 봄은 와 있겠죠..

 

*모처럼 몇칠 쉬면서 가족들 다 내몰고 상념의 나래를 타고 산골여행을 다녀 봅니다 .*

                      거기서 만난 산포지기님에 "산골얘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원 재목은  " 꿈꾸는 겨울여행"  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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