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1장의 서곡 - 나답과 아비후 이야기 (20)

by 곰솔 posted Jan 25, 201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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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마지막은 
시내 산에서 계시 받은 스타일대로
성막이 만들어졌다는 보고와 함께 끝난다. 

"(출애굽 후) 마침내 제 이년 정월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17절)" 

레위기는 그 완성된 성막 안에서 
드려지는 제사들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1-7장까지 이어지는데, 익숙해지면 흥미진진하다. 

8주 동안 반복했더니 그제야 대부분의 교인들이 크게 깨달았다.  

8-10장까지는 
제사장들에 대한 설명인데 
일단 목회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 2:9) 

그런데 이 부분에서 이야기 하나가 등장한다. 
레위기 전체에서 딱 두 번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어떤 학자는 이 이야기가 레위기 전체를 이끄는 핵심이라고 한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저마다 제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불을 담고 향을 놓았다.(중략)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자 그들은 죽고 말았다.”(10:1-2)   

도대체 이 두 아들은 왜 그랬을까? 
우선은 10장 9절에서 힌트가 보인다. 

"너의 아들들이 너와 함께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올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어기면 죽는다. 
너희가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칙이다."

이어서 10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더해진다. 
“너희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간할 때에도,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간할 때에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불편하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들은 너무도 가볍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지도 않지만, 일어서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운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소비 문화적 행태를 꼬집는 것보다 
이것이 레 11장 바로 앞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경건한 일상생활이 무너졌기에 거룩한 만남의 장소도 부정해진 것이 분명하다. 

설날이 다가오면서, 
예배 마치고 귀가하는 어떤 성도가 말한다. 
“바다의 우유라는 굴을 왜 못 먹게 하는지...???” 

아마도 굴이 제철이라고 그랬을 것이다. 
물론 성경은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순종함으로 구별된 삶을 명령하신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주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11장 4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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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것은 
보수 신앙의 이중성이라고 비난 받는다. 
심지어는 가족들, 특히 자녀들에게 해롭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 교회의 
기둥 같은 신학자의 딸이 
그런 비판을 담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꾸로 적용해보자. 
그래서 복음적인 신앙은 결과가 좋을까? 
소비문화로 자멸하는 세상에서 과연 올바로 세워질 수 있을까? 

신학 공부를 할 땐 전체 그림을 보려고 노력했다. 
목회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애썼다. 
이제 경제도 큰 그림 그린다. 

그런데 결론은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점. 
왜냐하면 “눈앞의 이익” 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자비와 은혜로 오래 참으셔야만 하였다. 

하지만 그 은혜의 시간이 주어질 때 
인간은 돌아서야 하는 때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나이 들수록 더 어렵다. 
하지만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품성의 완성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거기가 거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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