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금융화는 결국 이집트 7년 흉년으로? (23)

by 곰솔 posted Jan 26, 201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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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기억은
동료 대학생들의 거리 투쟁!!!
그땐 민주화라는 것이 대의였음에 분명하다.

1990년대의 기억은
해외여행자율화 분위기만 떠오른다.
물론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때 목회 10년이 넘어가던 시기였고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탐구했다.
<욕망>이란 단어가 <시대의 소망>과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2000년대의 기억은
종자돈으로서 <10억 만들기>
그리고 치솟는 1기 신도시 아파트 매매가격.

그래서 2006년부터 경제 공부 시작.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이해도 가능했다.
이제부터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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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의 금융화.
수많은 아파트들은 예외 없다.
집주인이든, 세입자이든 금융화에 포함되었다.

게다가 자영업 또한 금융화.
돈 빌려서 사업 시작하고, 이자를 갚는다.
월급 받는 사람들은 점점 비정규직화로 내몰리고.

그러니 저축이란 단어는 잊혀지고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와 같은 재테크가 상식이다.
최근에는 환율과 골드바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1980년대부터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본격화되었다.
금융위기 이후엔 엉청난 부채도 가졌고.

그래서 신용등급이 중요한 가치다.
부채가 많지만 갚을 능력이 충분하다는 뜻이기 때문.
목회 현장에서는 60대 이상에겐 이런 이야기는 놀라자빠질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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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사택을 마련하는 한국에선
자택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은행 융자를 받고
최근에는 교회 수리조차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시행한다.

최근 저금리 기조가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이런 일상의 금융화는 이제 사회적인 현상이 되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선 이 모든 게 정신 나간 짓이 된다.

설교할 때 어떤 목회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겠냐만...
내 경우엔 부정적인 경제 현상을 언급하면
반드시 항의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정신 차려라... 몰려다니지 마라...
선지자의 글, 예수님의 글이지만 다 소용없었다.
물론 난 그럴 때마다 우리의 현재 위치를 새삼 깨닫는다.

누군가가 한 말이지만 한국엔 좌파/우파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조차 대통합을 꺼내들었다.
성장 담론은 여전히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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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많았다.
인공지능 로봇에 의한 공장의 자동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사물 인터넷을 통한 혁명은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일반 노동자는 물론이고 고급 기술 인력에게도 마찬가지다.
10년 뒤 인공지능 로봇 기술로 구직난을 겪을 영역은
철밥통이라 인정받는 의사/약사/교사들이다.

반면 요즘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는 <문송합니다>는

융합학과처럼 오히려 인력부족을 예상하기도 한다.
인공지능과 달리 정답이 아닌 영역이기 때문.

첫 글 <독서와 토론>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제 우리 교회도 선교를 위한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70대 장로들이건, 40대 집사들이건...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

디딤돌 프로젝트를 통한 동네 교회 전략에서는
목회자는 코디네이터 또는 코치에 불과하다.
수많은 needs들을 목회자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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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위 글들을 요약하면...
일상생활의 금융화로 시작해서
프로젝트 선교 정책으로 글을 연결했다.

그래서 연결지점의 단어는 성장 담론이다.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 목회자들은 고개를 흔든다.
그들의 짧은 경험에선 민주화도, 금융화도 지난 이야기들이기 때문.

기본소득 논쟁이 과연 차기 정권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대학시절부터 이미 국가 장학금을 받은 세대들이다.
그러니까 평생 노동소득보다는 지원금으로 살아갈 거다.

지난 주말에는 겨울성경학교+캠프를 했는데
예산 200만원이 투입되면서 30명이 참여하였다.
이번 주말은 설날 연휴인데... 사택에서 밥상을 준비 중이다.

부모님이 목회를 하셨기에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
60년대에도 우리 집에선 국수를 자주 먹었다.
지나가던 교인들이 찾아왔기 때문.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앞날이란 이제 의미가 없게 된 걸까?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종말의 일상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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