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by Rilke posted Feb 28, 2017 Replies 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저희 교회에서 해마다 7월이 되며는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동네에 홀트입양회 본사가 있습니다. 알다시피, 홀트여사가 한국전쟁후에 한국에 있는 수많은 고아들을 위해서 설립한 기관입니다. 그후로 수많은 한국아이들이 홀트를 통해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왔습니다.

 

홀트에서 아시아담당하는 분 (이분의 아버지도 홀트에서 일했고, 이분은 한국인 2세)의 아이가 저희 한글학교를 다닙니다. 이분에게 최근에는 어디에서 가장 많이 입양이 되냐고 물었더니, 여전히 한국과 중국에서 가장 많이 입양이 된다고 합니다.

 

홀트에서는 주로 하는일이 입양인데, 그 중에 작은 부서에서 "입양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중 하나가 여름마다 입양된 아이들과 부모들이 모여서 캠프를 합니다. 미국에서 5-6군데 하는데, 각 캠프가 일주일간 합니다. 입양된 아이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정체성과 여러가지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캠프입니다. 주로 어린 아이들 (10대 초)이 참여를 합니다.

 

이 캠프를 담당하는 이들을 카운셀러라고 하는데, 이들은 20대 -30대 청년들로서, 이들도 입양되어서 미국서 살아온 사람들 입니다.

 

이들이 여름에 5-6주간 자원봉사로 각 캠프에 가서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작게는 18명, 많게는 30명정도 매년 자원봉사를 합니다.

 

이들이 이곳 홀트 본사에서 캠프를 준비하기 위해서 일주일간 교육을 받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입양후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저희 교회 한 집사님의 관심과 헌신으로, 저희 교회에서 해마다 이들을 위해서 일주일 교육기간동안 점심과 저녁을 해주고 있습니다.

 

매저녁 저희 교회에 와서 식사 (주로 한국 음식)를 하고, 같이 한국소개 비디오도 보고, 공원에 가서 식사랑 운동도 같이 합니다.

 

 

이 봉사활동을 마치면서 썼던 글을 올립니다.

 

 

 

 

군대가기전 서울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방학이 되며는 으레 부모님이 계시는 진도로

내려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부터 집을 떠나 있어서 항시 방학이 되며는 진도를 내려갔습니다.

 

대학을 들어가서 처음 3년간은 생각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하고 그리고 책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야

말로 인생의 꽃다운 나이, 황금기였지요. 많은 성숙이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참으로 삶이

진지했고 모든것에 질문을 던지던 시기였습니다. 삶이 온통 진지함속에 파묻혀 있던 저에게 몇달간의

시골생활은 많은 활력소가 되었고 여유를 가질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런데 한가지 이해 가지 않은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라 티브이 드라마를 보는 어머니의 모습이였습니다. 슬픈드라마를 보며는 같이 울고, 장희빈같이 열받는 사극을 보며는 죄없은 탈랜트를 괜히 욕하고 화를 내는것이었습니다. 왜 어머니는 드라마를 실재 삶과 구별을 못하고 드라마속으로 들어가서 그렇게 웃고, 울고 하는지 조금은 답답해 보였습니다.

 

요즘 큰딸이 한창 책 읽기에 빠져 있습니다. 얼마전에 조금 슬픈내용이 있는 단편소설책을 읽고 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은이 같은 어린아이들이야 책이랑 현실을 구분못하니 슬픈내용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것은 어쩌면 당연할텐데 나이 드신 어머니는 왜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고, 화내는지 이해가 안되었지요.

 

근데, 군대갔다오고, 필리핀 선교사 갔다오고, 그리고 미국와서 홀로 몇년을 살면서, 나도 모르게 슬픈책을 볼때 슬픈드라마를 볼때 눈물이 나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것은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것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때문이 아니고,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삶의 슬픈모습, 그리고 그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일이 실재 일어 났을떄의 그 슬픈모습, 그리고 그런 드라마처럼 살아가는 많은 이 세상의 슬픈이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면서, 철이 든다는것은 나 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것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라도 그들의 삶을 깊이 들여본다면 거기에는 우리가 감히 깨달을수 없은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고, 그리고 진지한 삶의 철학이 있음을 느끼면서, 이 세상의 어떤이들도 싶게 판단할수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일생을 살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유식해 진다는것은, 자기가 무었을 모르는가를 캐우치고 그리고 아는것을 잘 표현할수 있게 되는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배움이 없다고, 무식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 안에 많은 앎이 있고 깨달음이 있지만, 잘 표현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하나의 삶이 있고 그 인생을 통해서 깨달은 앎이 있고, 그리고 그 앎은 그 누가 작다 크다 판단을 내릴수는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다른사람을 판단치 말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한사람 한사람을 지나가는 타인처럼 보지않고 그 인생의 깊이, 그 삶의 희노애락을 본다면 그냥 스쳐 지나갈수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을까 싶습니다.

 

 

홀트봉사를 마치며 어쩌면 타인과 같은 입양된 젊은 청년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있는 20년의 생이 어땠을까,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의 진지한 모습은 무었일까를 고민해 봅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던 그 들의 해 맑은 모습이 그들의 다일까. 내가 알지 못한, 내가 보지못한 진짜 그들의 참된 모습은 무었일까를 생각해봅니다.

 

벌써 일년이 지났는데 작년에 왔던 홀트봉사자들중의 한 여청년이 생각납니다. 마치 내 시골에 있을법한 어렸을적 여자 동무처럼 생겼던 수수한 모습의 젊고, 착하고, 이쁜 아가씨. 마지막날 몇장의 서류를 저에게 보여주면서 자기이름이 한국말로 무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서류를 보는 저는 잠시 당황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그 청년의 과거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열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름, 본적, 고아원주소, 출생지, 그리고 저를 놀라게 한 "몇월며칠 어디 어디에 버려져 있던 아이, 그리고 어디 어디 고아원으로 옮겨지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미국으로 입양되다..."

 

비교적 상세히 어릴적의 아픔을 적어논 글을 저에게 태현히 보여주는 그 청년의 얼굴에게 저는 아무것도 읽을수가 없었습니다.

 

이 청년의 슬픔은 어디에 있는것일까. 몇년전에 저희교회에 사역했던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목사님의 아내 (사모님)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경우에 해당됩니다. 들은 이야기로는 이사모님은 지금도 어렸을때 미국으로 입양되었을 당시 공항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과 몇살의 아이가 어떻게 수십년이 지난 공항의 모습을 기억할수 있을까 했지만, 그 공항의 모습은 한

아이의 슬픈 과거이자 현재이며 어쩌면 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홀트봉사를 마치면서 더 많은 인생의 의문점을 남기고 간 젊은청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어떻게 하면 이땅에 있는 수없이 많은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동참할수 있을까 자문해봅니다.

 


Articles

8 9 10 11 12 13 14 15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