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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4 14:32

입에 지퍼를 단 사내

조회 수 179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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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따가웠다.

반면 약간은 간지러웠다.

의료보험 적용가, 13만 7천원. 그리고 15분 37초. 수술은 간단했다. 또한 저렴했다.

인스턴트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의사는 무표정했다.

의사의 웃음은 130만 7천원일때 비로소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나 역시 무표정했다. 굳게 잠긴 지퍼 덕에 나는 표정을 잃었다.

다시 회사로 들어갔을 때 동료들은 말이 없었다. 나를 보는 얼굴은 하나같이 무표정했다.

다만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설마, 자네도?
 
 

내가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현장소장의 호출이 들어왔다. 소장을 나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네도 받은건가, 지퍼수술을?"
 
  하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인걸 이거. 자네같은 사람이...발언권을 잠근다는 의미를 알고 있을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만 끄덕일텐가 계속? 그렇다면 자네 의사를 '그런 뜻' 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겠는가?"
 
  나는 고새를 끄덕였다.
 
  "알겠네, 나가보게."
 
  소장실에서 나오자 동료들은 내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왔다. 동료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지퍼가 없는 사람들 조차 입을 굳게 다물었다.
 
  실로 오랜만의 고요함이었다.
 
  내가 비로소 지퍼를 열어 본 것은 그날 퇴근 이후 였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지퍼를 조심스레 열어 이를 닦았다.

뱉지 못한 침이 입 속에서 파도쳤다. 한가득 침을 쏟아내고 구린내가 나는 이를 구석구석 닦은 뒤 나는 다시 지퍼를 채웠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나는 지퍼를 열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키스없는 잠자리를 가졌다.
 
  다음날 출근 했을 때 나는 부소장이 되어 있었다. 삽자루 대신 펜대가 쥐어졌고 목장갑 대신 커피잔이 손가락에 끼워졌다.

무척 더운 그날 나는 에어컨 속에서 추위에 떨었고 어제까지 함께 뻘뻘대던 동료들은 여전히 찍어누르는 태양빛에 복날 개새끼처럼 헐떡였다.
 
  나는 이제 노조 간부가 아니었다. 지퍼를 단 순간부터 나는 한마리 개였다. 물론 그 전에도 개였지만 적어도 투기견의 맹렬함은 간직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시츄였다. 혹음 마르티즈였다.

발언권을 잠그고 권리를 대변하던 씩씩한 입술에 지퍼를 채운 순간 부터 나는 회사의 손길아래 예쁨 받았다.

개팔자는 실로 상팔자였다.
 
  그날 저녁 소장이 술을 샀다. 일년 전까지 노조 위원장으로 함께 투쟁하던 나의 우상이 술을 따랐다.

저 기름진 배속에 발언권은 아직 숨쉬고 있을까? 빨간 머리띠를 묶고 결연했던 그의 이마는 어느새 반쯤 벗겨져서 번들거렸다.
  소장이 몸소 나의 지퍼를 열어주었다. 지퍼가 열리고 술이 들어가자 속이 후끈거렸다.

나는 빨리 마셨고 빨리 취했다. 취하자 발언권이 스물스물 치고 올라왔다. 화가났다. 어딘가 비겁했다. 혀끝에서 발언권이 맴돌았다.
  결국 나는 내지르려 했다. 그 순간 소장이 몸소 내 지퍼를 잠가주었다.
 
  "아직 자네는 지퍼를 닫을 순간을 모르는 구만."
 
  나는 더이상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소장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려 할 때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소장에겐 지퍼가 없었다.

그의 입술은 말끔하고 윤이 났다. 대체 그는 지퍼없이 올라섰단 말인가? 의문은 다음 순간 말끔히 사라졌다.

헤어지려던 우리는 근처 술집에서 나오는 회사의 간부들을 우연히 마주쳤고 소장은 가만히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갔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스윽하고 손가락을 그었다. 그의 입술은 굳게 잠겼고 그는 간부들을 향해 곧은 기역자로 인사했다.

소장의 아들뻘 되는 본사 부장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여운 인사를 건네받은 간부들이 너털웃음으로 사라지자 소장을 다시 입술 위에서 손가락을 왼쪽으로 그었다.
 
  "터치 스크린일세."
 
  소장이 말했다.
 
  "자네도 한동안 지퍼를 견뎌내면 회사에서 해준다네. 첨단의 기술이지."
 
  나는 감탄했다.
 
  그날, 나는 돌아오는 길목에서 술기운이 올라왔다. 똥꼬에서부터 토사물이 올라왔지만 뱉어 낼 수 없었다.

맞물린 지퍼가 어긋나 쉽게 열지 못했다. 입안가득 파도치는 침 속으로 토사물이 섞여들었다.

결국 나는 그것들을 다시 위장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리고 늦은 밤. 아내는 키스없는 잠자리를 거부했다.                  

 

                                                                                      단편소설/창용

  • ?
    김원일 2016.09.24 21:25

  • ?
    순악질여사 2016.09.24 21:35
    이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기에
    틀림없이 접장일거다 하고 찍었더니

    내가 명도사촌이라니깐......
  • ?
    가을날 2016.09.24 22:54
    첨 으로
    추천과 하트 다 받아보고.. ㅎㅎ
    사이트 UPdate 되니 좋습니다
    좋은 소스 많이 흠쳐 나를 께요

  1. No Image notice by 김원일 2014/12/01 by 김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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