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이기는 삶 - 누가 나를 정죄하리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6-27)
예수를 믿을 때,
우리가 믿음으로 입는 그리스도의 옷은
완전하고 흠이 없는 옷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으면
그 즉시로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결코 불완전한 아들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동시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그 생명은 불완전한 생명이 아니고 완전한 생명이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난 이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세속의 물결과 구습들,
선천적이고 조상으로 유전한 망령된 행실들로 인해
이 완전한 그리스도의 옷과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을 더럽히고 좀먹고 흐리게 하는
수많은 도전과 유혹과 시련과 고난에 직면하게 된다.
구약의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은 성막에 관계된
의식이나 의복, 모든 기구에 이르기까지
만드는 방법과 재료와 장,광,고를 상세히 일러 주셨다.
하나님이 하늘 실체와 원형의 모양과 식양을 다 일러 주셨지만,
유독 성소 바닥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바로 바닥은 그냥 흙이 있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이 아무리 발을 물두멍에 닦고 성결하게 하여도
그들의 발에는 성소 바닦으로인해 흙이 묻어났다
흙을 묻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부지중에라도 그들의 발은 더럽혀 졌었다.
성소 바닥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지상을 가리킨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우리가 침례 받을 때 입은 그 옷이
더럽혀지지 않고 구겨지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되는 것이다.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그러나 험한 광야 교회에서 살다보면,
우리가 범죄치 않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이 아닌 이상
부지중이든 혹은 일부러든 짓는 죄들로 인해
우리가 입은 그 옷은 더럽혀지고 구겨지고
우리의 발에는 죄의 흙들이 묻어난다.
묻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묻어 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바로 흙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물두멍이 필요한 것이다.
침례 받을 때 우리의 모든 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새생명으로 부활하여 새롭게 된 그 대로 한번도 죄짓지 않고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는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 8:46)라고
속직히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느 누구가 여기서 '나는 죄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살면서 더럽혀지고 구겨지는
우리의 그리스도의 옷을 깨끗하고 주름잡힘이 없도록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요 13:10)고 하신 것이다.
침례를 받아 온 몸이 이미 깨끗하게 되었으나
매일의 삶속에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히 12:1)로
인하여 발이 더럽혀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연약한 우리들 때문에 하늘 “휘장 안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히6:20)고,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라고 했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물두멍이 되어 주셔서
“마음으로는 원치 않지만 육신이 약하여” 짓는 모든 죄들을
씻으시는 샘물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초청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계 7:14)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또한 “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철저히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계 22:14)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날마다 더러워진 그리스도의 옷을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요 13:4-5) 오셔서 씻기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앞에 내 밀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요 13:1)는 주님께서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요 13:5)겨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은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고 하셨다.
그리스도와 상관이 있는 사람은 '완전하고 흠없는 사람'이다.
흠이 없는 삶은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여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선한 행위와 공덕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벧전 1:19) 분은 ‘어린양’ 예수님 뿐이며
“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히 9:14) 분은 ‘그리스도’ 뿐이시다
바로 그 흠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를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골 1:22)실 것이며,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유 1:24)이시다.
칭의의 주체도 예수이시며 성화의 주체도 예수이시고
우리를 긍극적으로 영화롭게 하시는 분도 오직 예수이신 것이다
제일 먼저 사망에 놓였있어던 우리, 죄로 죽었던 우리들이
어떻게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완전하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 그리스도인 삶이 완전해지는 것에 대한
정확한 답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
의롭게 되는 처음 과정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고
그 후 거듭난 사람이 사는 과정은 [예수님의 은혜]와
[우리의 노력]이 더해져서 우리가 온전하고 흠없는 생애를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사고이다.
우리 구속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가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 때문에", "예수를 통하여", "예수 덕분"인 것이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살면서 겪은 심적인 갈등을
로마서 7장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의 결론은 “내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이다.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행하는 자신의 처절한 무능력을 보면서
자신이 ‘곤고한 사람’이며 ‘사망의 몸’임을 시인하고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8:25)고 한다.
결론이 예수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안전과 완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닌,
[생명의 성령의 법]아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생애이며
“율법에서 벗어나” [의문의 묵은 것]이 아닌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생애인 것이다(롬8:1,2 ; 7:6참고).
완전론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 로마서 7장을
바울이 거듭남을 경험하기 전의 경험이라고 강변 하지만,
로마서 1장부터의 순차적인 내용과 7장의 내용을
상고할 때 로마서 7장은 분명히 사도 바울의 거듭난 이후의
영적 생애에서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로마서 1장, 2장에서는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임을 선언하고,
이러한 죄인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롬3:22)임을
3장에서 말씀하고 4장과 5장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6장에서는 그러한 믿음으로 거듭난 이들이
예수와 함께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경험과
거듭난 이들이 [의의 종]이 되어
‘거룩에 이르는 열매’를 얻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7장에는 그런 거듭난 이들
곧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므로’ 죄짓지 않으려는 ‘마음의 법’과
우리를 죄로 끌어 당기는
지체속에서의 한 다른법과의 싸움으로 인한
영적 생애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결국 8장에서 우리의 영적 삶의 유일한 승리의 방법,
이기는 방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7장이 바울의 거듭난 이후의 경험임을 알게 하는 것은
7장의 서두의 ‘남편 있는 여인이
생전에 법에 얽매여 사는’ 비유도 그렇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4절)다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5절)라는 말,
그리고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6절)다는 말 등 등
거의 모든 구절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침례를 받고 거듭난 이후의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거듭난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다른 말로 [오직 믿음의 법](롬3:27) 아래,
즉 [오직 예수 믿음 안에서] 산다
거듭날 때와 똑같이 ‘오직 예수를 통해’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에 의해’서 사는 삶이
거룩의 생애, 이기는 생애, 의로운 생애,
완전의 생애인 것이다.
그러한 생애에는 언제나 안전함이 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의 결론이 무엇인가?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설교문을 일부 고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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