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숯/ 정양
간장독에 띄울 숯을 사러 나선다
나무 타다 만 게 숯인데
나무토막 태워서 쓰자고 해도
어디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
아내는 참숯만 써야 한단다
읍내 장터를 다 뒤져도 숯이 없다
가슴속 한세상 더글거리는
타다 만 숯덩이들은 쓸모가 없겠지
육십릿길 달려간 시장통에서
가까스로 숯을 만난다
휘발유값이 몇 배는 더 들겠다
불길이 한참 이글거릴 때
바람구멍을 꽉 막아야 참숯이 된다고
참숯은 냄새도 연기도 없다고
숯가게 할아버지 설명이 길다
참숯은 냄새까지 바람까지 연기까지
감쪽같이 태우나보다
이글거리기도 전에 숨통이 막힌
내 청춘은 그나마 무슨 숯이 되어 있는지
언제쯤 냄새도 연기도 없이 이글거릴지 어쩔지
간장독에 둥둥 떠서 한평생
이글거리지도 못할
까만 비닐봉지 속 숯토막들이
못 견디게 서걱거린다
나 어린날/ 최명숙
"흰 손수건 달고 개울 건너 학교 가던 아홉 살 나는
어디 있을까?
싸립문 들어서면 서 있던 속 빈 배나무에는
배 두어 개 달리고 놀이터 삶아 놀던 울타리 밑에는
호박 넝쿨 그대로 올라가는데
어디로 간 건지 내 어린 날은.
얼마나 멀리 간 걸까?
등잔불 밑에 나를 데리고 앉아
가갸거겨 짚어 가시던 어머니의 거친 손길과
적삼에 배인 흙 냄새 풀 냄새에 취해
졸린 눈 비비던 내 어린 날은
돌아올 길 없는 길을 떠난
어머니를 따라 나섰을까?
나 살던 옛 고향집에 해 지면
외양간 옆 헛간에서 굴뚝새 울음소리
감자 옥수수 삶은 냄새
탁탁 튀는 모깃불 옆에서
끄덕끄덕 조는 어머니의 피곤처럼
내 어린 날도 어느 순간 피곤한 어른이 되었나?
읍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밤
술 취한 아버지 머리맡에는
아버지를 따라온 초승달 옆 초저녁별 떠서
찰랑이는 추억 한 사발
기억도 육신처럼 나이를 들어갈까? "
작가는 뇌성장애인 .장애불자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보리수아래 섬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