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계단

by 산울림 posted Oct 02, 2016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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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산으로
  뜀박질을
  해 올랐다.
  엄마는 걷기도
  힘든데 뛰었다고
  너 미치지 않았냐며
  내 머리를 툭 치고는
  서걱서걱 김치를 썰었다
  “김치로 뭐 만들려고 그래?”
  “묵사발 만들려고 한다, 땡기지?”
  멸치국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려 으스스 떨리는 날
  멸치국물에 메밀묵과 김 가루, 김치를 말아
  후루룩 마셔대면 이놈의 막힌 속이 팍 뚫릴까
  묵사발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과연 내 엄마답다
  못난 아들이 이리저리 채이다 망신창이가 되어버려
  산을 뛰어 오르내리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음을 알아버린
  어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메밀묵을 입에 넣었을 때의 그 까칠함이 반갑다
  뚝딱 한 그릇을 비우는 나에게 엄마는 “한 그릇 더 할래?” 하고 물었다
  “남았나요?” “물론” “그럼 더 주세요” “오냐” 엄마는 국자로 묵사발을 푼다
  숟가락으로 묵사발을 퍼먹던 나는 숟가락을 놓고 후루룩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후르릅 후르릅 후루룩 허억 흐흑 흐흑흑 흐흑흑흑흑 흐흑흑흑흑흑
  젠장 엄마도 후루루룩 소리를 내며 묵사발을 드신다면 이런 꼴을 안 들키는 건데
  난 대접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꺼억거리고 있었다. 차마 눈물은 보일 수 없었다
  “묵사발이 그리 맛있니? 너무 감동 안 해도 되는데.” 엄마는 조용히 일어났다
  “나중에 또 해줄게. 오늘은 다 먹어버렸네.” 이어 그릇 씻는 소리가 들린다
  대접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이익 하고 의자가 바닥에 끌린다  
  “잘 먹었습니다.” 모기 하품하는 소리로 간신히 엄마께 한 마디 하였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고 손을 밖으로 내밀었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손바닥 안에서 뱅글뱅글 맺혀있는 물방울은 슬프도록 영롱하였다
  아까 올랐던 저기 보이는 삼각산도 비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겨울이면 눈이 와야 할텐데 궁상맞게 웬 비람, 정말 궁상이야
  그래 너도 나보고 궁상이라고 했었지. 네가 많이 하던 소리
  남들 고속도로 타고 잘 달리는데 왜 굳이 오솔길을 걷니?
  너는 홀로 고상하게 유난을 떠는 나 때문에 힘들다했지
  그건 그저 궁상떠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었지. 맞아
  다 좋은데 내부고발 경력이 있군요 하던 면접관
  그러다 다쳐요 하며 용감한 시민상 주던 경찰
  쥐뿔도 없는 주제에 꼭 튀어야 하냐던 너
  맞아 이젠 나에겐 그 아무것도 없다
  너 마저 떠나버렸으니까 말이다
  힘들지만 털어내려 한다
  그래서 오늘 저 산에
  묻어두고 왔다
  내 소중한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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