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시작하고 성경이 끌고가는  살아있는 안식일의 변천사

by fallbaram. posted Jun 16, 2024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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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시작하고 성경이 끌고가는 

살아있는 안식일의 변천사
 
창세기 1과 2징에 등장하는 최초의 안식일은 

모세의 안식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안식일이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하시던 일이 다 이루어진 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식으로 들어가셨다

 

안식일에 대한 최초의 설명이다

 

그러다가 출애급기 20장에 나타나는 안식일은

모세에게 준 안식일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율법이라고 하는 프레임속에 넣어서 준 기별이지만

기별의 핵심은 문자적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지만

"아무일도 하지 않는 나의 안식"에

들어오라는 기별이다

 

엿새와 일곱째날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으로 보아서

창세기에서 여섯날 동안에 사용했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가

일곱째 날에는 없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서로 대조적 관계에 있으니까

 

일곱째 날의 이런 복음적 기별이 
모세의 시대에 와서 율법이라고 하는 프레임속에

들어와 사도바울이 고린도 후서 3장 7절에서 말하는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으로 바뀐 것일 뿐이다

 

그래서 모세의 시대

광야의 시대에서는 안식일에 나무를 하러가면 돌로 쳐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이고 그또한 문자로 읽지 말고 상징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여호수아 즉 예수의 시대에서는 이 안식일이

율법이라고 하는 프레임속에 있었던 안식일과

복음이라고 하는 프레임속에 있는 안식일과의 충돌이

벌어진다
 
어떤이들에게는 충돌로 보여질 수 있고
또 어떤이들에게는 전환이라고도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거듭남?"

 

요한복음 5장에 등장하는 기이한 풍경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고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놀라운 반응은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갑자기

창세기 2장 1절과 2절의 내용이 물구나무를 서고는

 

"내가 이날에 쉬었으니 너희도 아무일도 하지 말라"는

기별이 둔갑하여 "네 아버지께서 일 하시니 나도 한다"

로 변했다

 

구약과 모세의 시대에서는 "아무일도 하지 말라"가

새로운 언약과 여호수아의 시대에서는 "일 하라"로

바뀌더니 급기야 사도바울은 그의 편지인 히브리서에서

안식일을 다시한번 설명한다

 

첫절에서 부터 "두려워 하라"고 하면서 시작하는 기별은

안식일을 지켜라가 아니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라는 기별로 변한다

 

안식일과 안식을 구분하여 생각하게 하는 기별이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 이라니?

 

고리도후서 3장은 다시 이렇게 일러준다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그래서 성경을 문자로 읽는 것에 익숙해지면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메우 어렵다

 

요한복음 5장에 등장하는 이 엉뚱한 변화를 직면하기 전에

사도 요한은 3장에 이런 이야기를 먼저 도입해 놓았다

 

모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자 니고데모가

여호수아 (예수)의 시대 앞에서 

 

"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라고 말했고

 

예수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고 한 것이다

 

육의 일을 쉬는 것이 영의 일이고 영의 일을 하는 것이

육의 쉼이라고 하는 성경의 궁극적 가르침이 "거듭남"이라고

하는 묘한 표현속에서 "안식"이라고 하는 꽃을 피원다

 

지키려 한 자들은 지키지 못하고

지키려고 하지 아니한 자들이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는

이 요상한 기별이 "남은자'들의 기별이 아니겠는가?

 

덧붙여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신사적으로 하시라 
나도 그대들의 고견

듣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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