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by 김균 posted Jun 23, 2024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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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2007年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에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者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아내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뭉뚝뭉뚝 

묻어나는데,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글에 화답하여 쓴 아내의 글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남편이 드린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 詩人 아내의 絶唱이었습니다.


[아내의 답글]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詩 外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꽃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예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詩人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詩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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