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사심판'이며, 왜 '재림 전 심판'인가?(20090831)-1

by 김균 posted Oct 14, 2016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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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사심판'이며, 왜 '재림 전 심판'인가?(20090831)-1

 

(내 예전 글을 읽지 않았거나 기억 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전에 썼던 시리즈를 올려 볼까 합니다)

 

재림교회의 조사심판은

특정한 집단의 특정한 권위를 주장한다

그들만의 잔치를 인정한다

나는 그래서 이런 특정한 집단의 특정한 권위를 반대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이 위대한 진리는 재림교인에게만 특정하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마태복음 22장 예수의 비유를 들어

조사심판의 논리를 전개하는 것에 반대한다

마22장은 조사심판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하나님의 호소이다

그런데도 준비하라는 예복-복음-을 입지 않고

의를 자칭하면서 서 있는 많은 사람의 형편을 묘사하고 있다

 

엘렌이 그렇게 해석했으니

너 그것 안 믿으면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지자로 인정하는 것 하고

내가 새로운 성경해석을 하는 것 하고 다른 것이다

시대적으로 새로운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부터 160여 년 전 기별을 전하던 그 시대의 선지자를

오늘과 미래의 모든 학문과 신앙을 통치하는 선지자로 만든

우리들의 신학이 어떤 때는 이상하기도 하다

오늘날의 100년은 2000년 전의 1000년보다 더 발전되었고

학문이나 신학도 발전되었다

그런 세월을 살아가면서 바로 예수 오신다고 떠들던 시대에 해석한

그 해설을 그대로 영원히 간직한다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예복을 입지 않으면 바깥 어둠에 던져진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구원 얻지 못한다.

바로 이런 말이다

그게 무슨 조사심판을 예언(?)한 말이냐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쓰신 예수의 비유가 20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게 조사심판을 예언한 글이라고 한다면

우리를 제외한 누가 믿겠는가?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한 무리가 아니다

비유를 다시 보라

먼저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냈는데도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다른 이들은 그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하고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했다

 

재림교인들만 혼인잔치에 부른 게 아니다

잘 읽어 보시라

길에 나가서 악한 자도 선한 자도 만나는 대로 불렀다. 즉 누구든지 다 불렀다

이 말은 재림교인들만 부른 혼인잔치가 아니란 말이다

 

왜 우리는 이런 성경절로서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떠 올리게 하는가?

그게 바로 엘렌이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바로 예수가 오실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 시대가 지나갔고 모든 사람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그런 시대가 되었는데

왜 옛 것을 그대로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성경 해석은 시대를 따라 바꿔질 수도 있고 개인에 따라 다른 내용일 수도 있는데

우린 그런 것을 배격한다니 한 번 해석은 영원하다는 사상은 어불성설이다.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는 무리가 아니다

산과 들에 나가 닥치는 대로 데려온 오합지졸들이다.

즉 청함을 입은 사람은 세상사람 전부를 상징한다.

우리는 왜 성경을 사시로 해석하려고 노력할까?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정의하셨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모두 다 청함을 받았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었다는 말이다

청함 받은 모두가 구원 얻는 게 아니란 말이다

 

심판은 행위의 판결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입혀주시는 의의 옷으로

그 행위의 판결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누가 의인의 유업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성경은 그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보다 더 대범하게 말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데

그 새로운 피조물은 죽었을 때는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서는 영생의 복을 누린다고 한다

이 모든 결정은 바로 예수의 재림이다

 

그런데 조사심판 즉 재림 전 심판을 믿는 분들은

예수의 재림 전에 그 행위에 대한 결론을 지우는 날을 정하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의롭고 악한 사람은 악한 그 시간을 재림 전에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결정이 무슨 중요한 일인가?

밤에 도적같이 임하시는 그날이 오면 절로 다 알게 될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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