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자리에 창녀들이 있었다.

by 지경야인 posted Aug 28, 2017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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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엔 집장촌이 존재했었다.

외화 벌이의 일환으로 국가적인 형태로 집장촌이 형성되었는데 그나 시위현장 가까이엔 집장촌이 있었다.

국가의 암묵적인 외화 벌이가 되기위해선 정기적으로 한달에 한번씩 성병등 건강검진이 필수로 진행하여 기생관광이란 기가막힌  부끄러운 일이 관광 산업의 큰 축을 담당하던 시절이었지

그날 그 거리에 최루 기스가 날리고

총성이 울리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피흘리늘 부상자들은 과출혈로 대다수가 수혈이 필요 하였다.

총성 시민들은 거리로 나설 엄두도 못내던 그때

유리창의 내비치던 그 모습 그대로 줄지어 병원 응급실로 가서 달마다 받은 헐액 검사때문에 혈액형 검사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을 살려서 헌혈에 동참하여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국민을 지키라고 쥐어준 총칼로  도로에 사람이 보이면 무자비하게 갈겨 대던 그 자리에 거리에 여자들 창녀라  부르던 그녀들이 나섰다

벗은 몸 그대로 나서 않았더라면 그들도 총칼의 희생이 되었게지

그래  벗은 몸으로 그날 그자리엔  창녀들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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