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들 하십니까?

by 김주영 posted Dec 17, 2017 Replie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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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 영화 Confirmation

1991년, 전설적인 미국 대법원 흑인 판사 떠굿 마샬이 은퇴함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흑인인 클레런스 토마스를 지명했다.

그의 인준을 심사하는 상원 법사위원회에 제보가 들어왔다.
토마스가 이전에 여성 부하직원들에게 부적적한 행동을 했다는 것.
그 대상으로 아니타 힐이라는 이름도 함께.

시골 대학에서 법대 교수로 조용히 살고 있던 아니타 힐에게 상원의원 보좌관의 전화가 걸려 왔다.
토마스의 전력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힐은 이런 일을 폭로하거나 앞에 나설 의도가 전혀 없었다.
이전에 그랬던 여자들이 오히려 수치를 당하고 파면을 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법사위원장은 형식적으로 FBI 에 의뢰해 토마스와 힐을 조사했다 .
보고서는 법사위원회에서만 돌려 보았고, 그냥 예정대로 상원 전체 회의 표결을 밀고 나가려 하는데
그만 그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었다.

언론이 난리를 피우고 법사위는 힐을 소환한다.
힐은 등 떠밀려 세상에 나서게 된다.
힘들지만 진실을 알리기로 결심한다.

이래서 생긴, 미국 역사상 아마 가장 유명한, 아니 최초로 전국민의 관심을 일으킨 성희롱 사건이었던
토마스-힐 청문회

온 국민이 TV 에 매달렸다.

토마스의 인준은 불가능한 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 토마스는 기막힌 반전을 이뤄낸다.
소위 '인종 카드' 를 집어 든 것.

법사위원 전원은 백인이다.

자신은 지금 흑인으로서 백인들에게 '하이 텍 린치' 를 당하고 있다고
오히려 법사위를 공격한 것이다.

동시에 백악관과 공화당은 아니타 힐에 대한 진흙 던지기 맞불을 피웠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게 아니냐?
지난 10년 동안 뭐하다가 이제 나타났냐?
그 이후에도 토마스와 연락을 주고 받은 일이 있지 않냐?
혹시 버림받은 여자 아니냐?'

게다가 정신과 의사라는 어떤 사람은 힐이 erotomaniac (풍정? '성밝힘증') 이라고 했고
갖가지 거짓 진술서들이 마련되었다.
사생활이 들추어지기 시작했다.

힐은 거짓말탐기지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물론 통과했다)

victim (피해자) 이 villian (가해자) 가 된 것이다.

토마스와 힐 - 둘다 진실 서약을 하고 진술을 하는데
하나는 완전 거짓말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하루 종일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청문회를 중계하며
언론은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예일 법대를 나온 두 엘리트 흑인들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주간연예/썬데이 서울 식 선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국민들은 식상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창피냐.
이제 그만하자...

힐의 증언을 뒷받침할 증인들이 있었다.
토마스에게 같은 일을 당한 현직 기자도 있었다.
상원의 소환장을 받아 대기하고 있던 그들은 결국 증언하지 못했다.

자신이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카드로 상원을 공격하여 그들을 주춤하게 한 토마스는
52대 48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역사상 최근소 표차였다.
대법관은 평생직이다.

대법관 토마스는 현재 대법원에서 가장 우파의 법관이다.
전설적인 떠굿 마샬과는 전혀 다른 성향이다.

판사 1년 경력으로 대법관이 된 그는 몇년 동안 법정에서 단 한마디 발언도 하지 않은 진기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에서 힐의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한다. '내 학생들 (하바드 법대) 도 토마스보다 나아')

원하지 않게 세상에 나와 뭇매를 맞고 사라진 힐은
이후 시골 법대 교수 자리를 잃기도 했지만 나중에 버클리, 브렌다이스 대학 등에서 여전히 가르쳤다.

일견 이 사건은 토마스의 승리 힐의 패배로 끝났지만

청문회 이후 세상은 진일보했다.
힐의 증언 이후 고용 평등 기회 위원회에 성추행 고발이 두배로 늘었고,
법원의 보상금 지급 판결도 늘었다. 기업의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도 활성화 됐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정계 진출이 부쩍 늘었다.
백인 남자들의 놀이터였던 상원에 여성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청문회에서 당하던 아니타 힐을 보고 분노로 동기 부여된 여성들이 많았다.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후
대 놓고 여성을 비하하고 희롱하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시계는 또 거꾸로 간 것 같았다.

그런데 취임식 직후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데먼스트레이션이 워싱턴 DC 에서 열렸다.
Women's March.

오래 전에 당한 여성들이
Me too! 로 나오기 시작했다.

2017년 정계, 언론계, 연예게, 학계, 종교계
줄줄이 사냥이 시작되었다.
또 다른 지각변동이다
방구깨나 뀌는 남자들은 이제

밤새 안녕하십니까를 물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엊그제
당시 상원 법사위원장이었던 죠 바이든이 아니타 힐에게 사과한다는 말을 했다.

힐이 토마스의 음담패설에 시달리던 때 나이가 스물 다섯
내 딸 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HIvZuyps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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