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그렇게 끝냈어야 했나?

by 김주영 posted Dec 21, 2017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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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만큼 기독교인들이 신학적으로 귀중한 교범으로 받드는 책이 없는데

그 '신학적' 담론의 마침은 

14장에 와서 무엇을 먹고 마시는 문제로 서로를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는 말씀과 함께. 

 

왜 바울이 이런 식으로 끝맺음을 했을까

늘 의문이 있었다. 

 

최근에 유툽에서 NT Wright 의 로마서 해설을 좀 보면서

아하! 깨닫는 것이 있었다. 

 

Wright 은 로마서의 배경을 이렇게 그린다. 

 

바울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의 신자들에게 편지한다. 

로마에는 아마 당시 초대교회 모습 그대로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는 몇개의 회중이 있었을 것이었다. 

개별적으로 많아도 수십명도 되지 않는,  다 모아 봐야 많아야 기백명 될 듯 한 그런 교인들

그 가정 교회들은 서로를 잘 알지 못했을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21세기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들의 모습이나

본질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심각한 골짜기는 유대인 교인들과 이방인 교인들 사이였을 것이다. 

 

바울은 이들에게 서로를 받으라고 말한다. 

하나님에게는 거대한 계획이 있다. 

 

구태여 좀 거칠게 표현하면

갈라디아서에서는 유대인이 갑이었다면

로마에서는 이방인이 갑이었다. 

 

그들에게 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원감람나무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 

이방인 그대들도 아끼지 않으실 거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을 말한다. 

 

그런 배경에서 볼 때

무엇을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아이덴티티를  구별하는 가장 눈에 띄는 표였다. 

 

 나의 나 됨,  내 소속된 공동체의 아이덴티티, 소중한 가치, 특색, 유니크한 색깔

이런 것을 내세워 서로를 의심하거나 편을 가르거나 담을 쌓지 말고  서로 받으라고 말한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가 새삼 새겨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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