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의 구원과 99%의 구원

by 김균 posted Feb 19, 2018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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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구원과 99%의 구원

 

 

오늘 우리는 남은 자의 논리에 의해서

끝까지 남은 자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라고 가르쳐왔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했다고

남은 자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라고 가르쳐왔다

 

 

넓은 문

그런데 성경은 넓은 문이라고 적지 않고 이랬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그게 일종의 넓은 문이라는 말이다

거기는 문도 크고

가는 길도 넓고

그러니 찾는 자가 많다고 했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대로행이라는 말이다

예전에 어느 장로님이 군자는 대로를 가야하고 옳지 않는 것을 보면

굽히지 않고 나서야 한다고 해서 나섰다가 상대와 평생 원수가 됐다

 

 

한국에 기독교인이 1400만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휑하니 빈 교회가 많으니

많이 준 것은 틀림없다

우리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러 온 기사가 토요일은 바빠서 못하고

일요일에 설치해 줄 수 있다길래 난 안식일 교인인줄 알았다

일요일에 신청을 했더니 연락이 없다가 한참 후에 온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 교회 바로 앞에 있는 천주교회 다닌단다

그런데 성당도 젊은이가 없어서 자기가 노인들 뒷 심부름 다 해 주고나니

지금에야 왔다고 한다

큼직하게 지어놨길래 교인들이 많은 줄 알았더니 저들도 젊은이가 없어서

보통 문제가 아니란다

 

 

1400만명에게 물어봐라 어느 누가 넓은 길을 간다고 하는지를

모두들 성경에서 가르치는 좁은 길을 간다고 할 사람이 99,99%일 것이다

 

 

25장의 비유를 우리는 현실감각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가 50%이며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이한 처녀가 50%라는 것이다

극히 소수만 구원 얻는 게 아니라 50%가 구원 얻는다는 말이다

혼인잔치비유도 그렇다

예복을 나눠주어 잔치에 오라고 했는데 막상 온 사람을 보니

한 명이 예복을 벗고 있다

그럼 이 비유에서 말하는 구원은 99%의 구원쯤 된다

길과 시장 통에서 모두 끌고(?)왔으니 엄청난 숫자이다

그 중 하나가 예복을 벗고 강단 있게 앉아 있으니 그를 밖으로 내쫒았다고 한다

 

 

이상의 비유는 숫자가 말하는 구원은 아니다

이 비유들은 적은 무리만 구원 얻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 비유들은 주님의 은혜아래 살고 있었는가 또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게 1844년 어느 한 때 이루어진 적도 없고

그게 오늘 우리들에게만 구원을 약속한 지침서도 아니다

그래서 구원은 적은 무리가 받는 게 아니라 남은 무리가 받는다

험악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남은 자들이다

 

 

자다가 깰 때라고 가르친다.

선잠을 깨어 봐라 얼마나 피곤한 지를

한 두어 시간 자고서 잠이 안 와서 깨어 눈을 말똥 그리며 밤을 지새워 봐라

그 고통이 주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곤한 잠을 자다가 깨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자더라도 준비하고 자거라 하는 말이다

잠퉁이처럼 잠만 자지 말라는 말이다

인생에서 한 두어 번쯤은 잠을 위해서 사는 인생 되지 말고

자기의 구원과 다른 이들의 고통의 소리도 들어 보면서 살아가 보라는 말이다

 

 

구원은 숫자에 있지 않다

144000을 구원의 숫자로만 여기면 이단이다

그 숫자 채운다고 악을 쓰는 무리들은

그 무리만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맞이한다고 가르친다.

144000은 인간이 그런 숫자로 평가하라고 주신 무리가 아니다

144000이야 12지파가 12000명으로 계산하는 이스라엘의 개념일 뿐이다

출애굽시 이스라엘 각 지피는 지파별로 평균 5만명이었다

그 중의 지도자정예숫자는 12000명쯤 되었을 거다

아마 그런 개념으로 나온 숫자를 오늘 우리는 지구를 거쳐 간 수백억의 인구 중

144000명을 뽑기도 하고 현재 70억 인구 중에서 144000명만 구원 얻는다고

강조하고 강조한다

희한한 종교집단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숫자에 의한 구원론을 강의할 권한이 없다

지금도 그 숫자 채울 거라고 전도하는 이상한 교파도 있다

이런 무식한 것들이 인간성 몰락시키고 저들의 밥을 만든다

십일금 안 내면 암에 걸린다느니

남북한 정상회담이 안 되게 기도한다느니

이 빌어먹을 종교는 언제쯤 되어야 예수의 가르침으로 변화할까?

 

 

오늘 우리는 정말로 변화하는 신앙을 하고 있는가?

이웃의 아픔을 멀리하고 귀 막고 눈 붕대 감고 살지는 않는가?

나만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에고이즘은 아닌가?

내 몸을 불사를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도 된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

중국의 어떤 이는 평생을 고향동네를 위해서 땅을 파서 물줄기를 만들었다는데

그런 일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 사람은 정말 이웃을 사랑했을 거다 그러니 평생을 걸려서 그 일을 했지

돈을 바라고 했다면 그 물이 나오는 곳에 집을 짓고 열쇠를 채우고

출입증을 발급했을 것인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먼저 취했다고 내 것이란 말을 자주하지 않는가?

그런 사랑도 없으면서도 좁을 길 간다고 자부하지는 않는가?

말짱 황이다

완전히 도루묵이다

우리 신앙이 말이다

그래도 오늘 단 위에서는 언어의 진수성찬이 넘치고

각반으로 나뉜 안식일 학교 교과 반에서는

잘난 선생들의 다그치는 목소리가 넘칠 것이다

 

 

말짱 황의 신앙으로도 큰 소리 치는 세상

완전한 도루묵을 잡으면서도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떠드는 신앙

남의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하늘은 나를 보고 이야기하지 다른 이들 보라고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50%의 확률 99%의 확률을 0,001%로 격하시킨 우리의 구원론에 대하여

진솔하게 반성하면 어떨까?

 

 

 여러 사진들 07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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